Page 71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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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맺음말
오산 독산성 1차 발굴조사를 통해 건물지와 축대, 배수시설, 석축유구 등 다양한 유구를 확인
하였다. 대부분 조선 후기대의 유구로 확인되나 일부 층위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의 유
물이 확인된다. 임진왜란 이후 독산성은 수축 또는 증축되었으며, 숙종 이후 봉수대 및 성벽, 성
문에 대한 보수가 이루어졌다. 현재와 같은 성벽은 정조대에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19세기
중엽까지도 성내에 다양한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현재 발굴조사 중인 지점은 축
대와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지가 조성되어 육안으로도 확인이 되었으며, 발굴조
사 결과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축대는 총 4열로 확인되었으며, 아래쪽부터 순차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조성 시기
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가장 아래의 1호 축대의 경우 건물을 축조하기 위한 대
지 조성이 가장 큰 목표로 보인다. 그 위로 조성된 2~4호 축대는 경사면을 용이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단을 만든 것으로 보이며, 일종의 교통로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2기의 건물지
는 각각 형태적 차이가 뚜렷하여, 이에 따른 용도의 차이도 클 것으로 추정되었다. 1호 축대 위
에 조성된 1호 건물지는 석축과 초석, 매납된 옹기 등을 고려할 때 창고로써의 기능이 가장 컸
던 것으로 추정되며, 또는 성벽을 순찰하는 병사들의 임시 거처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판단된다.
독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조성된 독산성은 지리적인 문제로 인해 당시 물자 보급이 용이하지 않
았을 가능성이 크므로, 주요 물자를 곳곳의 창고에 보관하여 이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다
양한 창고의 건립 문헌 자료와 비교된다. 또한 이와 같은 창고는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 등에서
보이는 군포 또는 성랑과 규모적, 위치적으로 유사한 것이 주목된다. 2호 건물지는 2개의 부뚜
막을 이용해 더욱 원활한 조리시설이 이루어진 건물로 보이며, 서쪽에 위치한 연지시설로 추정
되는 곳에서 물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1차 발굴조사는 비록 작은 면적에 대한 조사였지만 밀집된 유구를 통해 당시 독산
성의 건물과 토지 이용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차후 발굴 자료의 축적을 통하여 과거 독
산성의 환경과 건물 양상을 파악하고 보존·정비가 되는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오산 독산성 축대와 건물지의 성격과 양상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