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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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이성산성 5차 A지구 출토 뚜껑(1/3, 漢陽大學校, 1998)


                【그림 10-③번, 그림 17】 유물 또한 뚜껑으로 추정된다. 손잡이 부분과 그릇을 덮는 부분이
               모두 결실되었으며, 외면에 문양이 남아 있다. 이 문양을 살펴보면 가운데 크기가 다른 2개의

               원을 겹쳐 배치한 후 그 주변으로 직선을 돌려서 찍어 마치 꽃처럼 표현하였으며, 이 꽃모양이
               손잡이 주변을 둘러 찍혀 있다. 전형적인 인화문으로 ②번 뚜껑의 유행이 지난 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17】 독산성 인화문 뚜껑(필자 촬영)



                                                                                   18)
                이와 같은 문양은 7세기 전반에 등장하여 유행하다가 8세기 초엽에는 사라진다 고 한다. 즉
               6~700년대에 유행한 인화문 중 하나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단각고배의 연대와 두 점의 뚜껑

               을 고려한다면 독산성은 6세기 중반 이후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지속적으로 활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8) 朴成南, 2009, 「서울·京畿地域 城郭 및 古墳 出土 新羅 印花紋土器 硏究」, 慶北大學校大學院 碩士學位論文.



               34  이형원·강정식·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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