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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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대에 수반한 곡물 보관 창고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독산성 주변에서 대규모 고분군

               과 저장시설, 주거역이 분포하는 점과 이 일대가 교통의 요충지라는 지정학적인 위치 등에서 볼
               때, 독산성 내부에 백제와 관련된 관방시설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화성 길성리토성과
               화성 사창리·요리고분군의 세트관계를 고려하면, 오산 독산성과 오산 수청동고분군의 세트 관

               계도 예상할 수 있다. 앞으로 진행될 독산성 발굴조사 과정에서 백제와 관련된 토성 또는 목책
               성의 존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살피는 데 있어서 오산지역의 마
               한·백제 물질문화에 대한 해석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백제의 영역화 또는 마한 통합과
               정에서 이 지역의 정치체가 백제의 중앙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어떠한 문화

               변동이 일어나는 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Ⅲ. 독산성에서 확인된 신라 유물과 그 의의





                2016~2018년에 걸쳐서 진행된 독산성 발굴조사에서 신라 유물이 소량 확인되었다. 아직 공

               식 발굴조사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았으므로 자세한 도면이나 제원 등은 확인할 수 없으나, 신라
               토기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그것이 갖는 의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1. 독산성의 신라 유물



               1) 단각고배(短脚高杯)
                【그림 10-①번, 그림 11의 좌】 유물은 ‘단각고배(短脚高杯, 다리가 달린 높은 잔)’로 추정되는
               잔편으로, 배신부(잔 하부) 일부와 대각부(다리) 일부가 확인된다. 대각부 외면에는 선명하고 두

               꺼운 요철면이 확인되는데, 물레의 회전을 이용한 성형과정에서 발생한다. 대각의 끝부분은 살
               짝 말려져 있다. 더불어 대각부에 구멍이 뚫린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예리한 칼을 이용하여
               한 변 길이 약 1cm 내외의 규모로 잘라내었다(투창). 이러한 형태의 단각고배는 신라 후기양식

               토기의 대표적인 기종으로서, 사용된 시기는 6~7세기 대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더불어 진
               흥왕대에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 시점이 6세기 중반(553년) 경임을 감안한다면 오산 독산




               30  이형원·강정식·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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