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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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애 유성룡,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도체찰사 유성룡이 나섰다. 수원을 찾은 유성룡은 백성들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여론을
               수렴하였다. 유성룡은 독산성을 튼튼하게 쌓고 무기를 갖추면 부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가옥
                                                                6)
               을 수리하여 들어가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때 유성룡이 집무공간인 동헌을
                                                   7)
               ‘운주당’이라 이름 붙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1596년 4월, 백성들의 바람대로 경기 관찰사 유근(柳根, 1549~1627)이 독산성을 수축하고
               백성들을 모집해 성안에 불러들였다. 동시에 창고를 지어 곡식을 저장하고, 군기를 제작하였
                                                                                    9)
                  8)
               다.  이때 조정에서 독산성에 방어사를 보내 군사교육을 전담하도록 조치하였다.  독산성이
               안전하다고 인식되자 성안에 살기를 바라는 백성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성의 규모가 원하는
                                            10)
                                                                                        11)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었다.  성안에 물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다시 대두되었다.  이런
               문제점이 나타났지만, 독산성은 차츰 요새화되어 갔다.


                 독산성은 이때부터 군사모집과 군사훈련은 물론 군량마련을 위한 국영농장 둔전을 모범적
               으로 경영하여 조정의 주목을 받았다. 조정은 남한산성과 고양지역에서도 독산성을 본받아 둔

                                                          12)
               전을 경영하도록 지시했을 정도로 신뢰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은 조선의 군사정책을 크게 변화시켰다. 중앙군으로 기병 중심의 오위(五衛)가 해
               체되고 보병 중심의 훈련도감(訓鍊都監)을 창설하였다. 1594년에 유성룡의 주도로 창설된 훈
               련도감은 조선 말기까지 약 300년 동안 중앙의 핵심 군영으로서 한양을 방위하고 국왕을 호위

               하는 임무를 맡았다.





               6) 선조29년(1596 병신) 4월 17일(계축)
               7)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7~1598)이 한산도에 있을 때 운주당(運籌堂)이라는 서재를 짓고 밤낮 그 안에 거처하면서
                 여러 장수들과 같이 전투에 관한 일을 함께 의논했는데 비록 직위가 낮은 군졸들도 찾아와서 말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정보와 지혜를 모아 승리의 전술을 세웠다. 운주당은 인화(人和)의 공간이자 지혜의 산실이었다. 운주당의 존재는 유
                 성룡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8) 선조27년(1594 갑오) 9월 19일(갑오)
               9) 선조28년(1595 을미) 9월 3일(임신)
               10) 선조30년(1597 정유) 2월 25일(병술)
               11) 선조33년(1600 경자) 4월 4일(정축)
               12) 선조27년(1594 갑오) 11월 19일(계사), 선조27년(1594 갑오) 11월 27일(신축)



               84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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