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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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임진왜란으로 독산성 새롭게 주목 받다





               1. 지리(地利)의 중요성을 깨닫다



                 임진왜란은 장수의 리더십과 상하의 화합, 좋은 지리가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용인전투는 지리(地利)와 인화(人和)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여실히 보

               여주었다.
                 1592년 6월 1일, 경상 전라 충청의 6만 대군이 경기도 용인에서 불과 수십 명의 왜군에게 대
               패했다. 이 소식은 신립(申砬, 1546~1592)의 탄금대 전투의 패전과 함께 조정을 절망으로 몰

               아넣었다. 총지휘관으로 추대된 전라감사 이광(李洸, 1541~1607)은 용인에 주둔하고 있는 적
               을 먼저 공격할 것을 주장했다. 다른 의견도 나왔다. 용인의 왜적은 방어하기 유리한 곳에 진

               을 치고 있으니 섣불리 공격하지 말고 수원의 독산성에 들어가 적을 유인해 싸워 승리를 거둔
               이후에 진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광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광의 명을 받은 선
               봉장 이지시와 백광언이 각각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진군하자 왜군은 거짓으로 후퇴했다

               가 아군의 잠시 방심할 때를 놓치지 않고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돌격하여 선봉장 백광언과
               이지시가 탄환에 맞아 죽었다. 두 장수의 사망 소식에 군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백마를 탄 장수를 따라 칼날을 번뜩이며 수십 명의 왜군이 달려오는 것을 본 충청감사
               윤선각이 겁에 질려 도망하자 6만의 군사가 “형세가 마치 산이 무너지고 하수가 터지는 듯”힘
                            1)
               없이 무너졌다.  용인전투는 조정과 백성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때부터 험한 산성에 진을 치고 적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어났다. 비변사 역시
               산성방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적과 대치하여 공격을 하거나 수비를 하려면 먼저 유리한 지

               형을 차지해야 한다. 그런 곳은 적이 꼭 지나는 곳이며 우리가 반드시 빼앗아야 할 지역이다.
               유리한 지형을 얻으면 승리하고 유리한 지형을 잃으면 패배하는 것이다.”명장으로 알려진 신
               립(申砬, 1546~1592)이 충주 탄금대에서 패하고 이광이 용인에서 패한 까닭도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천하의 요새인 새재를 버린 것이나 유리한 지형을 선
               점하고 있는 왜군을 공격한 것은 잘못된 작전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권율이 독산성을 방어하




               1) 선수25년(1592 임진) 6월 1일(기축)



               82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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