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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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결론
정조는 앞의 내용과 같이 자신의 왕권강화와 사도세자의 국왕 추숭을 목표로 수원신도시 건
설을 주도하였다. 수원신도시 건설은 곧 친위도시이자 개혁도시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정조 스스로가 君師로 자처하듯 본인이 강력한 왕권의 군주이자 공자의 학문 계승자라는 생각
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정조의 의도는 곧 자신의 친위도시인 화성유수부에 공자의 진영을 모
시고 해마다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리는 궐리사를 창건하기에 이르렀다.
정조는 궐리사를 단순히 공자의 제향과 수원 지역민의 교육만을 위하여 건립한 것이 아니라
탕평정책을 일환으로도 건립하였다. 충청도 이성에 건립된 궐리사가 붕당정치로 인하여 소론
이 장학한 노성 일대의 향촌사회에 노론이 소론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하여 만든 것임을 너
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당파싸움의 연장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조정의 명으로 건
립된 화성궐리사를 유일한 공자의 궐리사로 인정하고 이를 통해 당파의 폐단을 근절하고자 한
것이다.
더불어 정조는 화성신도시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궐리사를 건립한 것이다. 국가에서 만든 유
일한 궐리사를 건립함으로써 화성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성이 곧 노론학통의
지류를 이루고 있는 기호지역과 호서지역과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영남지역보다도 더 중요
한 유교의 계승 공간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화성궐리사는 정조의 개혁정책의 산물인 화성 건설과정에서 만들어진 유교 문화의 중
심지로서의 위상으로 건립된 것이다.
오산의 궐리사 설립 추이와 역사적 의의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