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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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은 거북놀이의 거북이가 북부지방의 밭작물인 수수 잎으로 만들어 진다는 점이다. 설명을
덧붙이면 고구려를 떠나 황해도 대방지역에서 서해안으로 남하한 소서노, 비류와 온조왕자의
세력이 아산만으로 들어온 것을 제시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4. 용인 할미성대동제에 담긴 소서노의 흔적
삼국사기는 백제의 시조모 소서노를 나이 어린 온조를 도와 백제를 세운 여걸로 기록한다.
2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기록하는 소서노召西奴 의 인물평은 다음과 같다.
백제 건국시조 비류(沸流)·온조(溫祚)의 어머니
백제의 건국설화로는 온조왕을 시조로 한 것과 비류를 시조로 한 것 등이 있는데, 그녀는 비류를
시조로 전하는 건국설화에만 등장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그녀는 졸본인(卒本人) 연타발(延陀勃)의 딸로서 처음 북부여왕 해부루(解扶婁)의 서
손(庶孫) 우태(優台)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우태가 죽은 뒤 한동안 졸본에서 과부로 살
다가, 부여에서 이곳으로 도망해 와서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朱蒙)과 재혼하였고, 고구려의 창업을
위하여 많은 내조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혼인한 예씨(禮氏)의 소생 유류(儒留), 일명 유리(類利)가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됨에 왕위계승권을 잃어버린 비류와 온조가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남하하
여 미추홀(彌鄒忽)에 정착할 때, 아들들과 동행하였다.
어진 용龍이 편히 누운 형국이라 명당과 명소가 많은 곳으로 알려진 용인의 진산은 석성산
石城山이다. 성주산聖住山으로도 불리는 석성산은 해발 471m이다. 석성산 8부 능선에 성책城
柵이 있고 마가실로 이어진 해발 349m 높이의 북쪽 봉우리에 석성 할미성老姑城이 있다.
성주산 8부 능선의 동쪽에 동문 석축이 남아 있는데 그 크기는 가로 7보, 세로 3보이다. 동
문의 내부에는 꽤 넒은 공터가 있어 통화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성은 최초 백제의 토성이었
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에는 몽고군과 항쟁을 벌인 고려의 석성으로 활용되었으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는 수도 한성을 지키는 석성으로 활용되었다.
9부 능선 지점에는 바위샘과 함께 삼국시대의 암기와 수키와 파편이 토출되는 좁은 공터가
있다. 아마도 이곳이 곡창과 병기를 비축하던 창고 터가 있던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의 정
29) 소서노(召西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독성려왕릉禿城麗王陵의 정체에 대한 小考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