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0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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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노력한 기간이 10년이 넘는데도 지정이 되지 않다보니 큰 실망도 하였다. 그리고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다.
1980년부터 불기 시작한 무속의 무형문화재 지정 분위기는 바로 경기도당굿의 예술로의 인
식 변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홍천릭에 빛갓을 날렵하게 눌러쓰고 손에 활을 들고, 판배
개 창이라는 경기도 특유의 창법으로 소리를 하던 오수복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
당굿의 기예능보유자로 1990년에 지정을 받은 분이다.
이 오수복의 증언에 의하면, 오수복은 정신대로 끌려가느니 결혼을 하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이끌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이도 일찍 남편과 사별하였고, 많은 식솔들
을 혼자 감당하게 된다. 이후 경기도 지역에서는 큰 만신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이가보 만신에
게 내림굿을 받는다. 그리고선 대를 이어 연행하는 화랭이 집안의 이용우에게서 경기도당굿을
익히게 되며, 1990년에는 경기도당굿의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기예능보유자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수복의 스승인 이용우가 교통사고로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지정 4개월 전에
타계함으로서, 이용우는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지는 못한다. 이에 그의 제자인 오수복은
문화재 지정을 받고, 스승은 받지 못함을 늘 미안하고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이 오수복도 지금
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다음은 그녀의 육성이다.
“무형문화재가 된 무당이 우리나라에 아홉이 있는데, 내가 그 중의 하나이다. 1990년 경기도당굿
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았는데 지정받기 전해인 1989년에 갑자기 사고를 당하셔서…. 보유
자 인정서를 받아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날 마루에 앉아서 그렇게 울었어. 넉 달만 더 살아
계셨더라면 선생님이 문화재가 되셨을 텐데. 또 넉 달만 지정이 빨랐어도 선생님이 이수자들을 좀
가르치고 돌아가실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워서 어쩌면 좋아. 참, 넉 달이…. 그것은 제가 받을 것이
아니고 선생님이 받으셔야 할 것이었는데…” 6)
2. 경기도당굿에 바친 이용우의 생애
앞에서도 일부 언급됐지만 오산에는 경기도당굿의 모태라고도 불리는 이가 있는데, 그가 바
로 경기도당굿의 대표적 연행자인 이용우(李龍雨, 1899~1987)이다. 그는 당시 경기도 수원군
성호면 부산리(현재의 오산시 부산동) 태생의 이름 높은 세습무(화랭이)이다.
6) 오수복 구술 기.
228 남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