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7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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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건 시인의 어린 시절엔 까마귀가 사계절 오산천과 운암들, 물에 잠긴 밀머리, 가마장, 박

                동, 산의 화장터에도 날아 다녔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오산천, 운암들, 암산, 밀머리, 박동 등
                은 부산동과 오산동, 원동, 궐동을 포함하는 권역이다. 20년 후 까마귀는 간데없고 나이 들어
                옛 추억을 반추하는 시인의 모습만이 보인다.



                7) 오산시 상징물 시화(市花)에 대한 역사성과 매화로의 변경 필요성



                  오산시의 시화는 개나리이다. 오산시의 시화가 개나리가 된 것은 화성군의 시 상징물을 그
                대로 답습한 것에 기인한다고 여겨진다.



                  개나리가 시화로 지정된 것은 경기도 31개 시, 군의 시화 상징물 중에서도 가장 흔한 11곳(안
                양시, 남양주시, 오산시, 안성시, 김포시, 화성시, 광주시, 양주시, 여주시, 연천군, 가평군)의

                지자체에서 시화로 삼고 있다.


                  오산, 수원, 화성의 3도시의 역사 중심지인 오산시에서 가장 흔한 시화를 가졌다는 것은 정

                체성의 고귀함을 많이 상실하는 시화 지정이라고 본다.



                  현재 오산시의 시화로 매화(梅花)를 선정하려고 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 지정이라고 본다.


                8) 그러면 매화(梅花)가 오산과는 어떠한 역사성을 가졌는가를 보도록 한다.



                    • 1789년(정조13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 따르면 현재의 오산동의 지명이 오매리(烏梅里)라 불
                     렸다.
                    •1789년(정조13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산천조」에 오산천이 오매(烏梅)천으로 기록되어있다.

                    •1793년(정조17년)『수원부읍지』에서도 오산천이 오매(烏梅)천으로 기록되어 있다.
                    •1831년(순조31년)에 간행된 『화성지(華城誌)』에서도 오산천이 오매(烏梅)천으로 표기되었다.
                    • 1910년,『사선읍지(私選邑誌)』영인본, 「경기도편 산천조」에 오산천이 오매천(烏梅川)으로 표시되
                     어 있다.


                  위에서 보듯이 1789년도부터 1910년까지 오산에는 좁게 보아도 오산동에는 매화가 많았음

                을 유추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지명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일 것이다.


                                                           새롭게 기억하고, 기록되어야 할 오산이야기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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