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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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독산성의 건물들
독산성은 백제의 고성으로 알려진 고성이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와 같았던 조선을
구하게 된 최초의 육전의 승전 전승지이다. 이정구(李廷龜)의 기(記)에 이르기를 경기의 읍이
37개 읍인데, 그 중 수주(水州)가 가장 크다. 인망이 무거운 사람을 선용해서 수주를 3도호부
2군 7현을 예속시켜 한남의 거진으로 삼았다. 고을은 평원광야 가운데 있어 산계험애의 막음
이 없고, 읍의 동쪽 10리에 우뚝 솟은 산이 있는데 산에는 수목이 없어 바라볼 때 민둥이가 되
었기 때문에 세속에서 산 이름을 독성산이라 한 것이다.
이 독산성 내에는 1831년 당시 주요 시설물이 기록으로 남아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세마대
(장대), 운주당, 삼문, 진남루, 어전청, 장교청, 관청, 사창, 오창, 군기고(화약고), 무고, 서고,
동고, 보별고, 보적사 등이다. 독산성은 경기남부의 군사 요충지로서 뿐만 아니라 성 내에 수
백호의 민가가 거주하는 생활공간이었고, 167칸이 넘는 관청이 들어서 있던 경기 남부 군사
행정의 중심지였다.
각 건물에 대해 알아본다.
독산성의 성첩 : 옛 기록에 309첩, 주회 1,010보(里로써 계산하면 5리이다). 성 둘레 현재 측
정치 1,100m.
문(門) : 네 곳에 있으며, 1개의 암문이 서문과 남문 사이에 있다. 총 5개의 성문이 있는 셈
이다. 남문은 진남루(鎭南樓)라 하였는데, 영조36년(1760년) 장헌세자가 임어하셨다. 성 위에
장대가 있었는데, 3칸이고 정조11년에 축조하였는데 정조14년(1790년)에 정조가 임어 하셨다.
순조31년(1831년)에는 성첩과 성문을 1병 중수하였다. 4개의 문 이외에 서문과 남문 사이에 또
암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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