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오산학 연구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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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를 통해서는 군수품을 보급하고자 하였다. 수원은 왜군의 부산-대구-충주-용인-한양(중

                로) 또는 김해-성주-청주-용인-한양(서로)으로 이어지는 주 공격로인 용인 인근에 위치하였
                고, 왜군의 입장에서는 수원이 막히면 곧 호서와 호남에서의 상경이 차단되는 것이었으므로 중
                요한 지역이었다. 또 바로 이러한 점이 조선군이 독산성을 중심으로 삼남지역의 근왕병이 주둔

                하거나 북상하는 주요 거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1592년 6월 전라감사 이광이 이끄는 3도 근왕병들은 용인전투에서 산성에 웅거한 왜군을 평

                지에서 공격하는 전술의 실패로 대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는 조선의 남도 근왕병 5만 명이 용인
                에 주둔한 2천여 명의 왜군에게 참패를 당하며 이후 임진왜란 진행 시 조선군의 전략에 큰 영향
                을 미치게 된다.

                 임진왜란 초기에 참패를 거듭하던 관군을 대신하여 삼남지방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크게 활
                약한 것은 의병들이었으며, 용인전투의 대패 이후 나주에서 거병한 호남 의병장 김천일은 전라
                병사 최원과 함께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북상하여 수원의 독산성에 주둔하였다. 김천일의

                                                                 29)
                의병부대는 대부분 유생과 일반 농민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북상하는 도중에 각 지역에서 관
                                                                       30)
                군과 작은 규모의 의병들이 투속하면서 그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김천일은 독산성에 머물며
                왜군의 앞잡이 노릇을 한 간민들을 처단하여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웠고, 날쌘 장사들을 선발

                하여 유격대를 4대(隊)로 편성하여 기습작전으로 인근 지역의 왜군을 공격하였다. 특히 금령(金
                  31)
                嶺)  싸움에서는 일시에 적병의 머리 15급을 베고 병기·갑옷·군마를 다량 노획하는 등 큰 전
                                 32)
                과를 올리기도 했다.
                 권율은 같은 해 9월에 한양을 수복하고자 군사 1만여 명을 거느리고 북진하였고, 10월 독산성
                                         33)
                에 들어가 진지를 구축하였다.  한양에 주둔하던 왜군 총사령관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
                는 권율이 호남에서 대군을 이끌고 북진하여 독성에 주둔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12월 한
                양과 용인에 주둔하던 병력 2만여 명 중 일부를 독산성으로 급파하였다. 왜군은 독산성 주위로
                   34)
                3진 을 편성하여 독산성을 포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을 직접 공격해왔다.                       35)




                29) 『瑣尾錄』 第1, 壬辰南行日錄, “김천일의 군사는 반이 유생이다”
                30) 趙湲來, 2001, 「金千鎰의 의병활동과 그 성격」, 『임진왜란과 湖南地方의 義兵抗爭』, 아세아문화사.
                31)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일대. 독산성과 직선거리 약 16㎞
                32) 『健齋集』 行狀.
                33) 『亂中雜錄』 卷1, 壬辰年 7月 9日.
                34)  오산(烏山), 청회(靑回), 그리고 독산성 서쪽 봉담면 일대에 ‘삼천병마골’이라고 불리는 지역도 왜군의 진영과 관련이 있는 것
                  으로 추정되나, 구체적인 장소는 알 수 없다.
                35) 이 글에서 정리한 임진왜란의 전개와 상세 내용은 심승구(2012)의 글을 많은 부분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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