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오산시 지명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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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산(新達山), 태장 병점리(台章餠店里), 지곶동 개골[介谷], 양산 장좌현(陽山將
坐峴) 등의 지명도 확인할 수 있었다.
(4) 서랑동(西廊洞)
서랑동은 세마동에서 가장 뒤늦게 생겨난 마을로 생각된다. 문헌에 서랑리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899년(광무3)에 발간된 『수원군읍지』에 산성면의 방리 중에 서리
가 있는데, 이것이 지금의 서랑리로 보인다. 그리고 1914년 4월 1일에 일제가 실시
한 행정구역 개편 때 처음으로 서랑리 마을 이름이 나온다. 이런 사실로 보아 서랑
동이 생겨난 것은 약 200년 전쯤으로 보인다. 이는 세마대 근처에서 살던 김해 김
씨들이 처음으로 건너와서 정착하여 마을을 이룬 것으로 본다. 처음 마을이 생겼을
때는 ‘사랑이’라고 불렀으나, 그 후에 사랭이, 사랑리로 변하여 서쪽에 있는 마을이
라 서랑리로 불려오다 서랑동이 되었다. 해평 윤씨 족보에 기록된 정림(正林) 사랑
동(士郞洞)이 서랑동의 본래 이름이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되기도 한다. 서랑동은 오
산에서 최적의 전원마을이며 교통이 조금 불편하기는 하나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심과 풍습이 남아 있어 고향 같은 마을이다. 서랑동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약
200여 년 전인 정조 때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원래 양산동 쪽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사도세자의 능이 옮겨오면서 산 너머 이곳 서랑동 쪽으로 이주하여 정착
하면서 처음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 성씨는 김해
김씨(현재는 금녕 김씨로 바뀌었음), 장수 황씨, 연안 차씨 등이었다고 한다.
■ 노적봉(산)
서랑동 앞쪽(남쪽)의 산으로 높이는 135.3m로 화성군 정남면 고지리․내리와 가장동․
초평동․신장동과 경계를 이루는 산이며, 생김새가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것 같아 노
적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한봉(산)
노적봉의 정상을 부르는 이름으로 우리말의 ‘크다’ 또는 ‘높다’라는 뜻의 봉우리를
말한다.
■ 된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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