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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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는 않았지만, 탑동·두곡동 일대 측구식탄요에서 주변의 제철유적으로 조업에 필요한 연
료를 공급하는 등의 생산활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3세기 중엽에 들어서면 기
존의 궐동 유적을 포함하여 인근의 탑동·두곡동, 청학동 일대에 주구토광묘가 조성되기 시작
하여 주 묘제로 정착하게 되며 3세기 후엽이 되면 수청동 일대에도 조성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주구토광묘는 대다수가 등고방향에 직교되도록 조성되어 지역적 특수성을 보인다. 2세기 후엽
~ 3세기 후엽까지 약 100여년 동안 지속되어 온 오산지역의 원삼국시대 문화는 특히 생활유적
에서 4세기 이후 백제의 세력권이 경기 남부지역으로 확산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눈에 띄는 변
화상이 보인다. 일명 백제의 관영 창고시설로 파악되는 대규모 저장수혈군들이 내삼미·외삼미
동 일대에 다수로 밀집 조성되는 것이며, 이들을 관리하는 주체가 거주했던 주거지들이 조성되
는 것이다. 생활유적의 양상과 다르게 매장유적에서는 3세기 중엽부터 조성되었던 주구토광묘
가 수청동 분묘군을 중심으로 지속된다. 다만 부장유물에 있어서는 장식환두대도, 중국제도자
기 등 위세품들이 일부 새롭게 부장되는 점으로 보아 지역집단과 백제 중앙과의 상호작용을 예
상할 수 있다.
고고유적을 통해 본 원삼국~삼국시대의 오산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