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오산문화총서 8집
P. 47
기록에도 4개의 문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후 기록된 1899년의 수원군읍지에서
는 성문이 4개고, 암문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암문의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1804년 순조
4년에 암문을 설치하는 것 등의 제반사항을 요청하는 기록이 있어 암문의 축조시기는 1804년
~1899년의 사이에 이루어졌을것으로 보인다. 1831년에 직접적으로 유수 박기수에 의해 독산성
의 수축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이 무렵을 중심으로 암문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 수문이 3곳이 존재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배수로는 서문과 암문
사이, 암문과 남문 사이, 그리고 서문에 확인되는데 서문은 문지의 보수와 함께 신축된 것으로
본다면 현재 3곳이 정확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다. 또한 학술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던 배수로의
출수구로 추정되는 배수로가 확인되었던 것으로 미루어진다면 수문은 3곳 이상 확인될 가능성
또한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독성아문이라는 편액이 내려진 시설이 있고, 흡창방, 사령방
등의 부속시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볼 때, 운주당 일대의 건물로 판단되어진다.
문헌기록은 문지에 대한 수량 이외에는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잔존여부나
특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독산성과 함께 주요 관방
체제로 언급되는 여주 파사성이나, 삼년산성 등에서 문루구조가 확인되고 있고, 독산성 서문지
에서도 주초석이 1기 확인되었던 것으로 볼 때, 앞으로의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져야지만 문헌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은 독산성 문지 및 문루구조에 대한 정확한 접근과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문헌기록에서는 전혀 언급되진 않았지만 최근 조사가 이루어진 세마대지 일원의 내성에
대해서도 통로 및 문지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에 대한 조사 또한 필요할 것이다.
Ⅳ. 맺음말
독산성의 문지의 전체적인 현황을 살펴보고, 다른 지역의 성곽의 특징들과 비교하여 그 특징
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또한 문지가 나온 기록들을 살펴봄으로써, 독산성의 문지에 대하여 특징
들이나, 시간적인 기록들에 대해서 비교검토를 실시하였다.
현재 확인된 독산성의 문지는 대부분 조선시대 전~중기의 형태를 기초로 하여 축조가 이루어
진 것으로 보이며, 암문지나 북문지가 축소되는 현상들은 다른 산성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현상
이었다. 따라서, 독산성의 문지들은 조선시대 산성이나 읍성에서 확인되는 보편적인 축조방식
오산 독산성 문지 현황과 특징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