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1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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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과거 왕의 행차를 행행(幸行)이라고 하며, 왕이 궁궐을 나가서 행차 지역의 백성들에게 행복

                                  1)
                을 나누어준다는 의미 를 지닌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행차를 목적에 따라서 명칭이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선대 왕의 능침에 가는 능행(陵幸), 왕의 생부와 생모인 사친의 묘소에 가는 원행

                (園幸), 지병 치료등 온천을 가능 온행(溫幸) 등으로 그 종류가 다양한다.


                 정조대왕 능행차는 1789년(정조13)에 배봉산에서 현재 융건릉의 자리로 옮기면서 현륭원(顯

                隆園)으로 이름을 바꾸고 원을 다시 조성하였다. 현륭원으로 사도세자를 옮긴 해부터 일제강점
                기 1938년(영친왕)때 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38년 현륭원 능행차를 끝으로 일제강점기
                정치적인 탄압으로 인해 더 이상 지속되지는 않았으며,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점차

                그 의미가 잊혀져갔다.

                 현대에 정조대왕 능행차를 재현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수원시 「화홍문화제」의 일환으로 진

                행하였으며, 1996년에는 최초로 일부 수원구간에 대해서 능행차 행렬을 재현하였다. 현재 진행
                하는 정조대왕 능행차는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원행을묘정리의궤』 등을 근거로 재현하였

                지만, 그 중에서 1795년(정조19) 혜경궁 홍씨 회갑연에 맞춰서 진행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기
                준으로 실시하고 있다. 정조대왕 능행차의 시작은 수원시, 화성시 등 각각 개별된 지방자치단체
                에서 실시하였으나, 2016년에 처음으로 서울시와 수원시가 함께 정조대왕 능행차 구간을 재현

                하였다. 이후 2017년부터 서울시·경기도·수원시·화성시 등의 구간에 포함된 지역들이 모두
                동참하여 원형을 토대로 완성도 있게 복원된 축제를 진행하였다.















                1) 행행은 고대부터 국왕이 궁궐을 나가서 행차 지역의 백성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행행은 국왕이 궁
                 궐 밖으로 행차하여 도성의 중심부를 지나 목적지에 이르는 형식이므로 오늘날의 퍼레이드와 유사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이
                 왕무, 2020, 「정조대왕능행차의 역사적 성격」, 『정조대왕능행차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연구 세미나』, 화성시.)


                                                         오산의 문화재와 정조대왕 능행차에 대한 검토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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