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5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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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關彌城 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지키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당시 남하 정책을 추구하던 고구
려는 391년(광개토왕 1) 7월에는 석현(石峴) 등 10성을 빼앗고, 이어 10월에는 광개토왕이 친
히 군사를 7도(道)로 나누어 관미성을 공격하여 20일 만에 함락시켰다.
《삼국사기》는 관미성의 형세를 사면이 가파르고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하였는바, 이에 따
라 관미성의 위치를 강화군 교동도(橋洞島)에 비정하는 설, 임진강과 한강의 하류인 조강에 위
치한 오두산성(鰲頭山城)에 비정하는 설, 또는 예성강 하구에 비정하는 설 등이 있다.
4) 사면초절하고 해수환요한 관미성
《삼국사기》는 관미성을 ‘사면초절(四面峭絶)하고 해수환요(海水環繞)하다’고 기록하였다. 여
기서 해수환요하다는 것은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란 의미이고, 사면초절이란 ‘병사가 동서남북
사방에 보초를 서며 굳게 지키는 곳’이란 의미다. 그런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사면초절
을 ‘사면이 가파른 지형’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백제 관미성의 정체 파악에 혼란을 주었다.
고산자 김정호는 관미성을 한강 하구의 ‘오두성’에 비정하였다. 관미성을 邑城이 아닌 山城으
로 해석하였다. 또〈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을 주장한 김성호도 관미성을 예성강 하구의
‘미라고성’에 비정하였다. 이 또한 관미성을 邑城이 아닌 山城으로 해석해석하였다. 그래서 백제
관미성의 정체 파악에 혼란을 주었다. 과연 김정호와 김성호가 비정한 관미성의 위치가 ‘오두성’
이나 ‘미라고성’일까?
한강과 임진강의 합수머리에 위치한 오두성을 답사한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오두성은 백성
이 주거하는 읍성이 아니라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산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오두
산성은 해수로 둘러싸인 섬이 아니다. 한수로 둘러싸인 절벽이다. 그러므로《삼국사기》의 해수
환요하고 사면초절하다는 기록에 부합하지 않는다.
필자는 관미성을 산성으로 이해한 김정호와 김성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관미성을 읍성
이 아닌 산성으로 본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 반면에 역사학자 이병도는 관미성을 강화군 ‘교동도’에 비정하였다. 산성이 아니라 邑城으
로 해석하였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의 합수머리에 위치한 강화군 교동도는 오랜 역사를 가진
4) 關彌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개토왕비문에 등장하는 모수성은 독산성일까?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