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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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석문에 오류도 있을 것이다. 반대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문 해석에 진척이 없

               는 광개토왕비문 연구의 새로운 시도와 시각에 그 목적을 두었다.


                주제어 : 모수성, 독산성, 광개토왕비문, 탁발도축문, 대격조사, 백잔, 이잔






               Ⅰ. 한반도의 빗장 강화도





               1. 關彌城(관미성)의 정체


                                                2)
               1) 《삼국사기》는 백제 關彌城(관미성) 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광개토왕元年(391) 冬十月, 功陷百濟關彌城, 其城四面峭絶, 海水還繞, 王分軍七道, 攻擊二十
                 日乃拔
                 진사왕八年(391) 冬十月, 高句麗攻拔關彌城, 王田於狗原, 經旬不返,十一月, 薨於狗原行宮
                 아신왕二年(393) 秋八月, 王謂武曰, 關彌城者我北鄙之襟要也, 今爲高句麗所有, 此寡人之所痛
                 惜, 而卿之所宜用心而雪恥也 遂謨將兵一萬伐高句麗南道, 武身先士卒而冒矢石, 意復石峴等五
                 城, 先圍關彌城, 麗人嬰城固守, 武而糧道不繼, 引而歸





                                      3)
               2) 《Daum백과》는 關彌城 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구려 남진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관미성의 위치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아 여러 설이 제기
                 되었다. 이병도 박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강화군 교동도로 비정했으며, 그밖에 강화도, 예
                 성강 연안의 중류, 하구의 남안과 북안 등 많은 견해가 있다. 고산자 김정호는 다른 지리서나
                 학자들과 달리 〈大東地志〉에서 임진강과 한강의 합류 지점인 교하의 오두성으로 단정했는데,

                 최근에는 이를 지지하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2) 關彌城, 《삼국사기》 김부식 지음,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상) 430쪽.
               3) 關彌城, Daum백과.



               132  임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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