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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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오산죽미령전투  연혁


                                (스미스  부대  기준)과  부대시설






                  <한반도  상황>

                  ❍ 1950년  6월  25일  –  북한  김일성  공산주의로  한반도를  통일한다는

                        명분으로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  남침함.
                  ❍ 1950년  6월  28일  –  3일  7시간만에  북한인민군  서울  점령함.
                  ❍ 1950년  7월  20일  –  대전,  인민군에  점령됨.
                  ❍ 1950년  7월  말경  –  북한  인민군이  영덕,  안동,  상주,  진주를  잇는  선까지  진출
                     하자  국군과  유엔군은  지연전을  펼치면서  8월  초  낙동강  선까지  물러나  방어선
                     구축.

                  ❍ 1950년  9월  –  인민군  경상도  일부만을  남겨두고  남한의  전  지역  점령.  이곳에
                     서  전선은  고착
                  ❍ 1950년  8~9월  –  낙동강  방어선은  아군이  더이상  물러설  것이  없는  최후의  방
                     어선이었다.  이  국군과  유엔군이  형성한  낙동강방어선에  북한  인민군의  집요한

                     공격은  8월,  9월  계속되었으나  격퇴하여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공세로  전환
                     하였다.  (낙동강방어선전투-낙동강전투  8월  1일~9월  23일).
                  ❍ 1950년  9월  15일  –  인천상륙작전,  맥아더의  지휘  아래  인민군이  장악하고  있던
                     인천에  상륙하여  작전을  성공시키며,  한반도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경상도  일부
                     분만  남은  한반도의  정황을  반전시키며  대성공을  거둔  작전
                  ❍ 인천상륙작전과  낙동강방어선전투로  국군과  유엔군이  공세로  전환하며,  상실했

                     던  남한지역과  북한지역까지  실지를  회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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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  상황>

                  ❍ 1950년  6월  30일  –  오산역사가  완전  파괴됨/미  지상군  투입  법적  승인  (워싱
                     턴)
                  ❍ 1950년  7월  1일  –  부산으로  공수된  24사단  제2연대  1대대  스미스부대  부산  도
                     착
                  ❍ 1950년  7월  2일  –  스미스부대  대전으로  북상/스미스  중령  오산  죽미령  일대를

                     정찰함.
                  ❍ 1950년  7월  4일  –  수원,  인민군에  점령당함
                  ❍ 1950년  7월  4일  –  자정  12시가  다  되어  평택에  있던  스미스부대,  오산  죽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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