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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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고 놀라 중추부사를 모시고 가족회의를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이 아기를 죽
이기로 결정을 하였다. 처음에 아기를 잡아 뉘고 맷돌을 올려놓아도 죽지를 않아서
방치돌을 오려 놓으니 아기가 말을 하기를 ‘왜 나를 죽이려 하십니까?’하고 물으니
‘너를 살려두면 삼대가 멸문하는 역적 집안으로 몰리니 어쩔 수 없다’고 한즉 ‘내가
살아도 역적은 안됩니다.’하니, ‘네가 죽어야 집안이 무사하다’고 하면서 죽으라고
이르니 ‘내가 죽어서 집안이 잘 되고 무사하다면 죽겠는데, 그냥은 절대로 죽지 않
으니 저를 죽이려면 날갯죽지를 잡아 뽑아야 죽을 것입니다.’라고 하여 날갯죽지를
뽑으니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면서, 투구봉과 금반향지간의 산이 갈라지면서, 용마
(龍馬)가 어흥 소리를 내며 달려 나와 동탄 구산(龜山)을 딛고 용인쪽으로 날아갔다
고 하는 전설이 전한다.
이 전설은 후에 기술될 애기바위전설의 크게 될 성 부른 아기들의 이야기와 같은
계열의 전설이다. 크게 성공하기를(큰 인물)바라는 집안의 바람과 시기하는 외압과
보존하려는 가문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이다. 현재에도 적용해 볼 수 있겠다.
★ 서랑(徐娘)의 전설
벌음동에는 약 360여 년 전부터 이천 서(徐)씨가 집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서씨
문중에서 전설같이 전해오는 애달픈 이야기가 있다. 때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
난 때의 일이다. 여진족인 후금의 군대가 조선을 침범하여 우리의 군사는 중과부적
으로 남으로 밀렸고 마침내 인조임금은 남한산성으로 몽진까지 하게 이르렀고, 후
금군에게 60여 일을 항거했지만, 결국 임금은 후금의 장수 용골대에게 신하의 예로
써 절하고 항복해야만 했던 치욕을 당하던 때이다.
벌음동 마을로 오랑캐(여진족)들이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고 부녀자에게 행패를 부
리며 살생을 저질렀다. 이때에 벌음동에서 살던 서희장군의 후손인 서대감[徐鳳鶴
公]이 부원수(部元帥)로 여진족과 싸우다 전사를 하게 되었다. 이 서봉학공의 슬하
에는 두 아들과 10대 후반의 아리따운 서랑(徐娘)이란 처녀가 있었다. 두 아들도
여진족과 싸우기 위하여 출전했고 집안에는 부인과 딸인 서랑만이 있었기 때문에
두 모녀가 서장군의 시신을 묻을 수밖에 없었다. 서랑은 인근에 인물 좋고 예절 바
른 낭자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랑캐들은 또 마을을 뒤지며 부녀자
들을 찾아 헤매다 서대감의 집 앞에서 서낭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미모의
서낭자를 발견한 그들은 서랑에게 접근하려 했으나 도무지 틈을 보이지 않자 강제
로 서랑의 몸을 끌어안고는 젖가슴을 주물렀다. 그러나 서랑은 완강한 반항과 서대
감 집안의 위용에 눌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갔다. 그 후 서랑은 집안에 들어와
오랑캐에게 능욕당함을 분하게 여겨 오랑캐의 손이 닿은 젖가슴을 물로 씻고 또 씻
었으나 영원히 그 더러움을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품에서 은장도를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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