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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떻게든  이  산꼭대기에  물이  많다는  것을  적들에게  보여야  공격을  단념하고  돌아갈

                  것이라  판단하였다.  그래서  군사들에게  적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말을  세워놓고
                  는  물로  말을  씻듯  말의  잔등에  쌀을  부으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니  왜군들은  산꼭
                  대기에  얼마나  물이  많으면  말을  다  씻기느냐  하면서  공격을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곳을  말을  씻긴  곳이라고  하여  세마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권율의  승전  기념  장대인  독산성  안에  세워진  세마대.  권율은  성안에  물이  풍부함을  왜적에게  알리고
                  자  말을  쌀로  씻어  성안에  물이  풍부함을  과시  왜적을  속였다함.  이  장대는  전쟁이  끝나고  승전을  기
                  념하기  위해  선조의  명에  따라  세웠으며,  여러  번의  복원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  능지기와  정조  임금의  전설


                      조선  정조  때에  화산릉(현  융릉)지기가  살았는데  하루는  독산성  안의  보적사에
                  계시는  스님이  지나다가  능지기를  보고  “당신은  내일  죽을상이요.”하니  능지기가

                  하도  기가  막혀  스님을  붙잡고  늘어지며  “내가  죽을  줄을  아니  분명  살아날  방도도
                  알  것이니  제발  알려주시오.”라고  사정하니  한참을  망설이던  스님이  “그러면  내일
                  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능  앞에  엎드려만  있어야  하네.”라고  이르고는  유유히
                  걸어갔다.  다음날  능지기는  새벽에  일어나  하루종일  능  앞에  엎드려  있었다.  효심이

                  지극한  정조대왕은  생부의  묘인  화산을  자주  찾았는데  그날도  화산에  나섰다가  비
                  를  만나게  되어  수원  행궁에서  유하게  되었으나  비가  오니  아버지의  묘가  걱정이
                  되었다.  임금은  신하를  불러  “당장  능에  가  보아라.  만약  능지기가  집에  있으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와야  하느니라.”  추상같은  임금의  명을  받은  신하는  능지기의
                  집에  들러  보니  능지기가  보이지  않는지라  능으로  가  보게  되었다.  능지기는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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