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오산문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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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VOL. 73  osan culture







              본 휘장은 전투에 최일선으로 참여한 보병들 중                    지고 병영과 작전지까지 날랐다. 전쟁 이후 현재까
              우수한 인원을 선별하여 수여하는 것으로, 각인                    지도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이 부대는 각종 장비

              된 “Second Award”휘장은 2번의 전쟁에 참여한              의 보급과 유지, 전시 상황의 인원 이동, 항공 및
              우수보병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오산죽미령전투에                    철도, 전술 차량 운행과 정비, 유류 보급 등의 전
              참전한 스미스특임부대가 제2차 세계대전과 6·25                  방위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쟁의 총 2번의 전쟁에 참여한 부대라는 것을 의                  이 안내판은 KSC(Korean Service Corps)부대에

              미한다.                                         서 1972년 9월 21일에 유엔군초전기념비를 보수하
              기념비 왼쪽에는 알루미늄 판으로 만들어진 한국                    고 난 뒤 제작·부착한 것으로 전국에서 “유일”하
              노무단(KSC)안내판이 있다. 한국노무단은 6·25전                며 유엔군초전기념비와 옛 동판과 함께 경기도 등
              쟁 당시 창설된 미8군 소속에 한국인으로 구성된                   록문화재 제3호로 등록되었다.

              특수부대이다. 정식명칭은 한국 노무단이며, 이명                   오산시는 1955년부터 매년 7월 5일이 되면 스미스
              칭은 미9군 지원단(현재 미 8군 소속이며 미군부                  특임부대 전몰장병의 추도식을 개최하고 있다. 이
              대 지원근무를 수행한다는 의미), A특공대(6·25전                는 전쟁에서 희생당한 스미스부대원을 추모하는
              쟁 당시 지게를 지고 물자수송을 했을 때, 지게가                  것은 뜻은 물론이 거니와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

              알파벳 “A”와 닮은꼴이어서 “A Frame Army”라              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뜻을 다시 한번 되
              불림)이다. 전쟁에서는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무기                   새기는 의식이기도 하다.
              와 병사가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물자의 이동                  오산시는 6·25전쟁에서 첫 격전지로 전쟁의 시작
              이 중요하다. 전쟁을 수행할 무기와 병사들이 사용                  점이 되었지만 동시에 북한군을 저지하여 한반도

              할 물품과 식량이 조달되지 않는다면 그 전쟁은 전                  의 평화를 수호하는데 중요한 분기점의 역할을 한
              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25 전쟁은 갑작스런                 평화 수호지의 역사를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UN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전쟁은 먼 과
              군은 물론 국군 측에서도 미리 전쟁물자를 구비해                   거의 일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일이기도한 점을 우

              놓는 일은 불가능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리 모두 실감하고 있다. 유엔군초전기념관과 스미
              미국은 비대해진 군사력이 자유민주주의를 저해할                    스평화관, 오산죽미령평화공원을 방문하여 나와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와 함께 재정 악화, 핵무기                   내 이웃, 가족이 만들어 갈 미래를 파괴하는 전쟁
              맹신 등의 이유로 병력을 축소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 참상을 다시 한번 꼭 생각하고, 평화의 중요성

              빠른 보급이 어려운 시기였다.                             을 일깨우길 바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8군 사령관 밴프리트 장
              군은 전쟁의 확실한 승리를 이끌기 위해 한국인
              으로 구성된 노무단을 결성했다. 이들은 “A특공

              대”라는 별칭에 맞게 지게에 갖가지 군사물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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