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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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 1호 건물지 단축 토층


                내부토에서 벽 또는 지붕이 무너져 내린 흔적이 확인되며, 소토덩어리가 다수 확인되는 점에
               서 화재에 의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 중에 기와편, 백자편, 도기편이 수습되었으며,

               할석으로 기초를 구획한 후 벽체를 쌓고 기와를 올린 건물로 추정된다.
                1호 건물지와 같은 형태의 건물지는 북한산성, 남한산성, 한양도성 등 조선시대 성곽 유적에
               서 일부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



               표 2. 조선시대 산성 출토 관련 건물지 속성표
                       유적명           유구번호      면적(m)       규모(칸)        성벽이격거리        추정시기
                   오산 독산성(2017)        1호      4.5×3.6       -            약 20m       조선후기
                    남한산성(2002)         1호      7.0×2.4    정면3, 측면1        약 4m         17C
                    남한산성(2007)         1호      6.6×2.1    정면3, 측면1        약 10m        17C
                                                                                      숙종이후
                  남산 봉수대지(2009)       4-2호     7.8×3.4    정면3, 측면1        약 10m
                                                                                      (17C이후)
                                                                                      숙종이후
                    북한산성(2015)         3호      7.8×3.2    정면3, 측면1        약 4m
                                                                                      (17C이후)
                                                                                      숙종이후
                    북한산성(2015)         4호       9×5       정면3, 측면1        약 5m
                                                                                      (17C이후)
                   여주 파사성(2014)        2호      5.9×3.9    정면2, 측면1        약 10m       15~17C


                남한산성(2002) 조사에서 성벽 안쪽 4m 이격 지점에서 1호 건물지가 조사되었으며, 북동향

               이다. 3칸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각 초석간의 거리는 약 2.1m이다. 보고자는 영조척 7자
               를 기준으로 구획한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지에서는 10~11㎜의 조총환 십여점과 17세기로 보

               이는 자기류가 확인되어 시기를 가늠케 한다.
                남한산성 암문·수구지 일대 발굴조사(2007)에서는 건물지를 초석과 석렬을 기준으로 구분
               하고 상층과 하층 건물지로 분류하고 있다. 만약 2개의 건물지로 본다면 약 30㎝의 높이 차이로

               볼 수 있다. 건물의 중심연대는 출토 백자를 통해 17세기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는 당시 조사 대



               58  노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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