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8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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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기도도당굿의 절차와 내용
조선시대에 무속이 미신으로 억압받으면서 국가 단위의 굿은 사라졌지만 마을굿들은 조선시
대에 불교, 유교와 융합하면서 오히려 성행하였다. 경기도도당굿도 일본 강점기 전까지는 경기
도 지역에서 번성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다른 마을굿들과 함께 현저히 축소되었다. 그나마
일본 강점기를 버티고 유지되어온 경기도도당굿은 한국전쟁과 미신타파 정책을 펼친 새마을운
동 등으로 인해 급격하게 소멸됐다. 1960년부터 1980년까지의 기간에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다. 경기도도당굿은 마을의 형편에 따라 2~3일 정도 진행했다고 한다. 1980년 경기
도 부천시 장말(덕수 장씨 집성촌)에서 진행된 경기도도당굿도 사흘간 진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에도 경기도도당굿이 인천 남구 동막(현 연수구 : 현재는 전통마을이 사라져 동막도당굿
은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이나 부천 장말 등에서 연행되었지만 이틀 정도 연행하였고 사흘간 진
행된 도당굿은 어느 기록에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12굿거리가 처음 채록된 것은
1930년대 경기도 오산 부산동의 세습무 이종만의 구술에 의한 것이다. 이종만에게서 경기도도
당굿을 학습한 이용우는 1987년 타계할 때까지 인천, 부천, 수원, 오산 등지에서 경기도도당굿
을 연행하였다. 그 이후 경기도도당굿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게 된다. 김포시 양촌 출신의
세습무 조한춘과 이용우와 만신 이갑오에게서 도당굿을 배운 무녀 오수복이 경기도도당굿 기능
보유자로 지정받게 된다. 현재는 그들 모두 세상을 떠났다.
우리의 무속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시기는 일제강점기 때부터지만 경기도도당굿을 학계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된 시기는 1980년대 이후로 보인다. 이때의 기록들은 매우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1980년, 1982년, 1991년 부천 장말도당굿, 1984년 인천 동막도당굿 등을 연구한
황루시, 김헌선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경기도도당굿의 굿거리 절차와 내용을 정리한다.
경기도도당굿은 예전에는 3일 이상 난장을 여는 규모가 큰 마을굿이었으나 1980년대 이후에
는 2~3일 정도 굿을 했다. 경기도도당굿은 마을주민 모두가 모여 결정하고 준비한다. 먼저 굿
을 하는 날짜를 잡는데 인천 동막의 경우는 음력 3월에, 부천 장말의 경우는 10월에 3년마다 지
낸다고 한다. 굿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책임자를 당주(堂主)라 하는데 마을 어른들이 가려 적임
자를 뽑았다고 한다. 경기도도당굿은 본격적인 굿을 하기 전날 당주의 집에서 벌이는 당주굿으
로 시작된다. 다음날 오전 당주집에서 굿당까지 올라가는 중간에 길거리에서 부정을 가시는 거
리부정을 한다. 이렇게 굿을 이어가 맨 마지막에 굿에 따라 들어온 잡귀들을 풀어먹여 보내는
‘뒷전’으로 도당굿은 마무리된다.
286 박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