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7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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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에 구원을 바라는 종교적 믿음이 도당굿을 통해 표현되었던 것이다. 또한 마을사람들은 도당
굿을 통해 공동체적인 일체감과 함께 유대감을 더욱 공고히 하였을 것이다. 이런 종교적인 의미
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해진 마을굿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가정의 편안을 기원하는 집굿과 마을굿을 포함한 우리나라 무속은 지역적으로 차이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북부지역에는 신이 내린 강신무(降神巫)가, 남부지역에는 조상 대대로 혈통을
따라 계승되는 세습무(世襲巫)가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중부와 북부의 전통적 강신무를 박수류
라 하고 남부의 세습무를 호남은 단골(당골이라고도 함), 영남은 무당, 제주도는 심방이라 지칭
한다. 그러나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 지역에서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굿 양식이 나타난다. 경기도
도당굿은 크게 경기 북부와 경기 남부로 나뉘어 굿의 내용과 굿의 연행 방식이 다르다. 경기도
북부 지역은 강신무가, 남부지역은 산이 또는 화랭이라 부르는 남자무당이 도당굿을 도맡아 연
행한다. 우리나라의 북부와 남부를 구분하는 경계가 경기도도당굿에서 나타나는 특징과 무관하
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도당굿의 남자 세습무를 지칭하는 화랭이는 6세기 신라의 화랑
(花郞)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노래와 춤을 통한 문화적 풍류로 신령과 교제함으로써 어려운 문
제를 해결하려 했던 화랑도의 정신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화랭이들은 미지(무녀를 지칭, 화
랭이와 미지는 세습무계 집단에서 사용하던 은어로 속어에 가까워 정작 본인들은 그렇게 불리
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함)와 보통 12거리로 되어 있는 경기도도당굿을 함께 진행하며 삼현
육각으로 편성된 악기로 도살풀이장단·덩더궁이장단 등 다양한 무악(巫樂)을 연주하고 진쇠춤
·터벌림춤·쌍군웅춤 등 무무(巫舞)를 추었다. 경기도도당굿이 여타 마을굿과 다른 특징은 이
렇게 예술성 높은 기능을 가진 화랭이들이 굿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다는 데 있다.
경기도도당굿을 남부형과 북부형으로 구분하는 경계의 기준점이 되는 강신무와 세습무에 대
해 경기도도당굿보존회 전수교육조교인 오진수(72)는 “무당을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누어 도당
굿을 구분하는 것은 강신무와 세습무의 차이를 전제하는 것이다. 강신무와 세습무는 입무(入巫)
방식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굿에서의 진행방식이나 굿 절차에 따라 맡은 역할의
차이가 크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동안 굿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입장에서 강신무와 세습무의 차
이를 설명할 때 강신무는 ‘신을 영접한 효험이 있는’ 무당을, 세습무는 ‘기예를 익힌 신내림과 무
관한’ 무당을 가리킨다는 해석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세습무인 화랭이들
역시 대부분 신내림을 경험했고, 강신무인 무당도 무업을 가진 가계에서 많이 배출된다는 것이
다. 경기도도당굿의 특징과 차별성을 강조하다보니 강신무와 세습무를 전혀 다른 이질적 대상
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세습무와 강신무의 가계 등을 분석하는 등 경기도도당굿에 대한
연구 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경기도도당굿의 현황 및 전승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