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7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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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역 시장 소재지·거래물품 현황(1934년) 19)
연간매매규모(圓)
시장명 소재지
농산물 수산물 직물 축류 기타잡품 계 개시일
성내시장 수원읍 29,651 13,000 35,600 404,510 46,500 526,261 9일
성외시장 수원읍 29,876 12,912 38,500 401,115 46,000 528,403 4일
오산시장 성호면 40,850 5,470 9,160 388,536 25,800 469,816 3·8일
남양시장 음덕면 7,570 4,800 12,500 30,005 45,200 100,075 3·8일
발안시장 향남면 20,800 2,560 16,500 111,025 10,100 160,985 5·10일
반월시장 반월면 6,360 480 4,356 181 10,862 22,239 1·6일
신기시장 송산면 3,600 8,940 44,640 44,208 82,560 183,948 2·7일
삼괴시장 우정면 6,500 1,800 4,500 11,200 28,000 52,000 3·8일
계 145,207 49,962 165,756 1,390,780 295,022 2,046,727
1940년대에 들어서 수원지역의 상업 상태를 조선식산은행에서 발간한 『식산조사월보』에 의해
살펴보면 주요 거래품목은 곡물로 나타나 있다. 이 시기는 일제가 우리 민족의 인력, 물자, 경제
력 등의 수탈에 혈안이 되어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모든 부문에서 어려운 국
면을 맞고 있던 시기였다. 또한 이 당시에는 일제에 의해 철저한 통제 경제가 실시되고 있었으
므로 수원지역의 곡물배급은 생활필수품 소매상업조합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1940년 경기도 식량배급조정위원회가 설치되었고 석탄, 연탄에 대한 판매취체규칙이
제정되었다. 1941년 5월 중 수원의 주요 물가동향을 보면 정율(精栗) 1석(石)이 도매가로 29.90
원이었고, 조율(粗栗)은 16.50원, 대두는 30.80원이었다. 그리고 이즈음에는 미곡상인 중에서
미곡거래의 두절로 인해 제면업으로 전업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도 하였다. 이때 수원의 제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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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12호였고 생산량은 약 12만관에 달하였다. 이 모든 거래가 오산장터에서만 거래되지는
않았겠지만, 오산지역의 상업적 거래인 것만은 확실하다.
19) 오산시사편찬위원회, 『오산시사2권』, 2009. 587쪽.
20) 오산시사편찬위원회, 『오산시사2권』, 2009. 587쪽.
오산장(烏山場)의 역사성과 변천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