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8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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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광복이후 오산장
1945년 이후의 오산은 일제강점기하의 어려움 속에서 광복을 맞았음으로, 우리의 경제가 정
상 궤도에 올라서기에는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다. 또 미군정 실시, 좌우익으로 대치된 정치 상
황과 함께 경제사정 또한 혼란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특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고 곡물이 크
게 부족하였다. 1945년에 수원물가운영조합의 결성이 추진되었으며, 1948년에는 매산시장이
개설되었다. 1949년에는 수원군 금융조합의 기능을 일신하기 위해 협동조합추진위원회가 조직
되었고, 수원경찰서에 경제계가 신설되어 경제사범을 단속하는 등 상업분야에 있어서 정상궤도
로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1950년 한국전쟁으로 한순간에 와해되고
말았다. 1949년 8월 수원이 시로 승격되면서 수원군의 나머지 지역은 화성군이 된다. 이 화성군
은 그 중심지를 잃고 또 다른 시장을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1950년대는 결국 전
후 복구를 위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오산도 이 상황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한편, 1952년부터 3월부터 시작된 오산시장의 분규는 1952년 4월 8일 먼저 위치해 있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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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시장터 와는 달리 새장터 에 시장을 개설함으로써 상권쟁탈이 시작되었는데, 1953년 4월
28일 쌍방은 새장터는 매 3일, 구시장터는 매 8일에 개시하는 것으로 합의 타결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상인들은 이 정책에 호응하지 않았고 구시장으로 집중되며, 새장터는 시장 형성 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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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게 되었다. 이후 우시장만 새장터에 남게 되어 1988년 12월 오산시 승격 직전에 공매
되어 남촌동으로 이전되고 끝내는 발안으로 완전 이전되었다. 1970년대 들어서도 오산은 여전
히 화성군의 한 읍으로 존재했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얻기 어려웠
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화성군의 상업 사정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70년대에 9개
까지 개설되었던 시장은 1980년대에 들어서 5개소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교통이 편리해지고 5
일장은 상설점포의 증가와 사설시장이 개설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
다. 1987년 당시 화성군 시장분포 상황은 정기 공설시장이 오산, 남양, 송산, 우정, 향남 등 5곳
에 개설되어 있었고, 일반 사설시장이 오산읍에 한 곳이 개설돼 있었다.
21) 현 오산동의 오산장
22) 현 궐동에 설치된다. 그러나 상인들의 구시장으로 집중되며 와해되며, 우시장만 남았다가 이 우시장도 청학동으로 이전되고
현재는 발안으로 완전 이전되어 소멸되었다.
23) 화성군 오산읍이 1989년 1월 1일에 오산시로 승격된다.
256 남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