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5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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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나오는 말





                  오산시의 문화적 뿌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다고 단언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문화란 유기적

                생명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오산시의 구비전승과 민속놀이로써의 거북놀이
                는 재인청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한다.

                  왜 오산시의 도깨비들은 음악을 좋아하는가? 그리고 굿구경을 다닌다고 하였을까? 이것이
                오산시의 ‘흥’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왜 은계동의 거북놀이는 맨드라미로 거북의 귀를 만들
                어 용처럼 형상화 하고자 하였을까?

                  필자는 이러한 전통들이 부산동에 거주하였던 경기재인청의 도대방과 도산주를 지낸 이종
                하와 도산주를 지낸 이종만, 그리고 도대방 이종하의 아들 이용우로 이어지는 과정에 자연스
                레 오산시 전통문화의 여러 방면에 스며들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판단한다.



                  다만 과제가 있다면 1784년에서 1920년에 이르기 까지 존재하였던 경기재인청의 도산주 이
                종만에 의하여 경기재인청의 위상은 확인할 수 있으나 언제부터 경기 재인청의 도대방과 도산

                주가 오산시 부산동 가마뫼에 정착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그리고 효행으로
                표창이 상신되었던 이종만의 증조부 이계명이 어탄면 송라리에 거주하였다는 기록으로 부산

                                                                22)
                리의 무속인 집단인 이용우의 집안이 1821년에서 1850년 에는 오산시 부산리에 거주하였던
                것은 아님이 또한 사실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로 보아 부산리의 무속인 집단이 이주하여 정
                착한 것은 1920년 당시 100년을 전후 하였을 것이라 추단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은계동의 거북놀이, 오산시의 도깨비 이야기를 통하여 전하는 오산시
                의 문화적 전통이란 음악과 흥, 그리고 격식이 있고 품격이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22) 道光年間 이계명은 어탄면 송라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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