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0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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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본 연구는 경기도당굿에서 화랭이로 활약한 오산 출신 이용우의 삶과 춤에 대해 고
               찰해보기로 한다. 연구방법은 우선 문헌자료로 김헌선과 목진호, 변진섭, 박미영 등의 연구논
               문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1984년과 1986년 경기도당굿 등에 나오는 이용우 영상자료를

               분석하고 춤을 고찰하기로 하였다.






               Ⅱ. 이용우의 성장과정과 활동






               1. 성장과 학습과정


                                                                     3)
                 이용우는 1899년 4월 5일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 원리 60번지 에서 화성 재인청 출신이며,
               세습무부인 부친 이종하(李鍾河)와 미지(巫女)의 사이에서 태어난 무속인으로 약 11대에 걸쳐
               무업을 대물림한 전통적인 세습무가 출신의 화랭이이다. 부친 이종하와 숙부 이종만(李鍾萬)
               은 아키바 다카시(秋葉隆), 아카마츠 지죠(赤松智城) 공편 『조선무속의 연구』에 오산 지역 무가

               를 제공해 준 분들이다. 이종하는 춤의 명수였으며, 당시 명고수이자 춤에 뛰어난 한성준(韓成
               俊)보다 몇 살 위였다.
                 이용우가 참여하는 도당굿에서는 화랭이가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군웅노정기’나 ‘뒷전’은

               그가 도맡아서 연행했었다. 또한 이용우는 판소리나 대금, 꽹가리, 춤 등에도 능숙한 다재다능
               한 명인이었다. 이용우는 계모였던 박금초로부터 8세부터 판소리를 배웠으며, 부친이 이끄는

               창극단을 따라 전국을 유랑했는데, 이 때 함께 다닌 명창으로 송만갑과 이동백 등이 있었다고
               한다.
                 15세부터 20세까지는 광무대를 비롯해서 단성사 등을 따라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소리를 했

               다고 한다. 22세 되던 무렵에는 대금 공부를 통해서 잽이로서 도당굿을 다녔다고 한다. 이후





               2) 김헌선, 「경기도 도당굿 화랭이 이용우(1899-1987)의 구비적 개인사」, 『口碑文學硏究』 1(서울: 한국구비문학회,
                 1994), 1-30쪽; 이보형, 「경기도당굿 명인 이용우」, 『월간국악』 통권7호 8월호(서울: 국악중심, 2001), 44-47쪽.
               3) 김헌선, 시지은, 「경기도 남부 도당굿 화랭이·미지의 계보와 의미」, 『민속학연구』 제21호, 2007, 39쪽.



               268  이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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