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오산문화 62호
P. 76

오산문화소식




              OSAN CULTURE NEWS









              것 이외에 우리가 무의식 속에 행하는 것들                     쪽의 여러 종족이 사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의 근원은 무엇일까? 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논어’의 구절을 기억해 내며 공자의 유적을 돌

              ‘논어’내용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은 이 시                 아보니 뿌리에 대한 그리움을 겪었을 공자의
              대에도 논어와 주역이 우리를 근원으로 돌아가                    인간스러움이 느껴졌다. 당대에는 성인으로 추
              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 받지 못했지만 그분의 사상과 정신이 이어
              이번 여행은 사사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을                    져 3천 제자들의 세상을 향한 가르침이 아직도
              아는 단계를 지나 미래의 시간을 스스로의 생각                   진행 중이다. 아직도 마침표를 찍지 않고 인간

              과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고자 했                   의 완성을 위한 공자의 가르침이 곳곳에 있는
              던 중국유학자들의 자취를 찾아가는 길에 공자                    것을 확인하는 동질의 희열을 오산문화원 곡부
              의 영정이 있는 오산화성궐리사와의 관계정립                     워크샵 일행들과 같이했다.

              도 포함되어있었다. 우리가 접하고 살았던 ‘예’                  최정준 교수는 ‘예’가 공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의 모양을 보고 ‘예’를 따라 하기보다는 ‘예’를 품               이미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것을 다 수렴해서 공
              고 있는 곡부의 지형과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자방식대로 ‘예’를 인간의 삶의 방법과 규범 안
              2천5백여 년 전 공자를 태어나도록 한 곳의 사                  에서 윤리나 도덕이라는 논리로 체계화하는 일
              람들이 사는 모습이 지금은 어떻게 변해있을                     을 여러 제자와 함께 논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까? ‘예’가 나오기까지 공자님의 끊임없는 자                   김준혁 교수는 “오산에 최충의 사당인 문헌서
              기 수련과 학문에 대한 깊은 통찰이 곡부를 싸                   원이 있는 것은 오산과의 우연의 일치가 아니
              고 있는 지형을 통해 만나는 결곡한 탐구가 이                   다. 오산이 표방하는 평생교육도시의 암시적

              시대에도 발현되고 있을까? 어떻게 발현되어                     상징일 수 있다”며 오산화성궐리사 안에 교육
              야 하는지를 거론하며 공자의 유적지를 찾아보                    장이 건립되면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는 일에 동참했다. 우리가 머물렀던 곡부와 추                   활성화해 공자가 주창한 교육적인 마인드와 통
              성을 통해 중국의 유학사상의 본거지를 보면서                    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역사가 중국과 불가분의 관계를 눈으로 확                    오산문화원 공창배원장은 “중국을 여러 번 다녀

              인하다보면 우리가 서있는 위치와 앞으로의 미                    왔지만 이번은 의미가 다르다. 유학의 본거지인
              래를 내다볼 수 있으리라 보았다.                          곡부에 가서 공자님의 후손으로 자부심과 긍지
              공자가 동이족의 후손으로서 역사적 뿌리가 같                    를 갖고 오산시와 곡부시의 이상적인 방향과 오

              다는 전제로 바라보니 더 친근하게 보였다. “동                  산문화원의 역할을 제고하고 논어의 가르침을


           74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