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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문화소식
OSAN CULTURE NEWS
것 이외에 우리가 무의식 속에 행하는 것들 쪽의 여러 종족이 사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의 근원은 무엇일까? 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논어’의 구절을 기억해 내며 공자의 유적을 돌
‘논어’내용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은 이 시 아보니 뿌리에 대한 그리움을 겪었을 공자의
대에도 논어와 주역이 우리를 근원으로 돌아가 인간스러움이 느껴졌다. 당대에는 성인으로 추
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 받지 못했지만 그분의 사상과 정신이 이어
이번 여행은 사사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을 져 3천 제자들의 세상을 향한 가르침이 아직도
아는 단계를 지나 미래의 시간을 스스로의 생각 진행 중이다. 아직도 마침표를 찍지 않고 인간
과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고자 했 의 완성을 위한 공자의 가르침이 곳곳에 있는
던 중국유학자들의 자취를 찾아가는 길에 공자 것을 확인하는 동질의 희열을 오산문화원 곡부
의 영정이 있는 오산화성궐리사와의 관계정립 워크샵 일행들과 같이했다.
도 포함되어있었다. 우리가 접하고 살았던 ‘예’ 최정준 교수는 ‘예’가 공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의 모양을 보고 ‘예’를 따라 하기보다는 ‘예’를 품 이미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것을 다 수렴해서 공
고 있는 곡부의 지형과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자방식대로 ‘예’를 인간의 삶의 방법과 규범 안
2천5백여 년 전 공자를 태어나도록 한 곳의 사 에서 윤리나 도덕이라는 논리로 체계화하는 일
람들이 사는 모습이 지금은 어떻게 변해있을 을 여러 제자와 함께 논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까? ‘예’가 나오기까지 공자님의 끊임없는 자 김준혁 교수는 “오산에 최충의 사당인 문헌서
기 수련과 학문에 대한 깊은 통찰이 곡부를 싸 원이 있는 것은 오산과의 우연의 일치가 아니
고 있는 지형을 통해 만나는 결곡한 탐구가 이 다. 오산이 표방하는 평생교육도시의 암시적
시대에도 발현되고 있을까? 어떻게 발현되어 상징일 수 있다”며 오산화성궐리사 안에 교육
야 하는지를 거론하며 공자의 유적지를 찾아보 장이 건립되면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는 일에 동참했다. 우리가 머물렀던 곡부와 추 활성화해 공자가 주창한 교육적인 마인드와 통
성을 통해 중국의 유학사상의 본거지를 보면서 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역사가 중국과 불가분의 관계를 눈으로 확 오산문화원 공창배원장은 “중국을 여러 번 다녀
인하다보면 우리가 서있는 위치와 앞으로의 미 왔지만 이번은 의미가 다르다. 유학의 본거지인
래를 내다볼 수 있으리라 보았다. 곡부에 가서 공자님의 후손으로 자부심과 긍지
공자가 동이족의 후손으로서 역사적 뿌리가 같 를 갖고 오산시와 곡부시의 이상적인 방향과 오
다는 전제로 바라보니 더 친근하게 보였다. “동 산문화원의 역할을 제고하고 논어의 가르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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