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오산문화 62호
P. 66
오산문화소식
OSAN CULTURE NEWS
기 서예가는 이번에 직접 쓴 여러 권의 책을 전
시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직접 세필로 쓴 책들
이다. 글씨를 쓸 때가 재미있고 시간가는 줄 모
른단다.
이번 개인전에 온 친구나 형제들이 글씨 잘 쓴
다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작품성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고 갔다. 오산에
글씨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급예술에 속
조상기 서예가 하는 붓글씨가 하급예술로 전략하지 않도록 했
다고 마음먹었다. 단국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으면 한다. 사서삼경, 채근담, 중국의 명언집
틈만 나면 먹을 사서 정주상 서예가가 운영하 등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글씨를 쓰고 있는데,
고 있는 공평동 학원에 입문하고 열심히 쫓아 40년 전인 1970년대에는 글씨 공부를 하고 싶
다녔다. 한문을 배우기 위해 유도회 한문연수 어도 책이 없었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일본말
원에 다니면서까지 한문을 배웠다. 을 배워서 일본어책을 사서 배우곤 했는데 지
대학을 졸업하고 오산중.고등학교에 근무하면 금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나온다. 일본사람들
서도 오산역에서 3시 40분차 기차를 타고 서울 은 서예를 학문화시켰다. 서예도 체계가 잡혀
에 가서 글씨를 배우고 막차를 타고 오는 생활 있다. 서예주간지가 20개가 있을 정도인데 한
을 20년 동안 했다. 글씨를 배우러 정주상 서예 국은 한국서예신문이 얼마 전에 생겼을 정도로
가에게 20년을 연로할 때까지 다닌 셈이다. 지 빈약하다.
금은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을 지금까지 교직 행서와 초서가 좋다는 조상기 서예가는 그것
원과 오산사람들에게 되돌리고 있다. 을 익혀서 표현하는 예술성으로 남이 흉내 내
조상기 서예가는 다른 것을 해볼 기회가 없었 지 못하는 조상기 서체를 만들었다. 세월의 흐
다. 남들이 즐겨하는 당구나 골프 등 다른 취미 름 속에서 평지풍파를 겪고 연륜을 쌓으며 가
에는 관심이 없다. 어렸을 때는 운동하기 바빴 치관과 인생관이 들어간 그만의 서계를 만들게
고 그 이후에는 글씨에 빠져 틈만 나면 글씨만 된 것이다.
썼다. 글씨는 노력에 의해서 개발되고 선생을
잘 만나야 글씨 실력이 향상된다고 했다. 조상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