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오산시 지명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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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동 함박산 밑 배마니(배무니) 골짜기에 있는 샘물로 조선시대 때 세조대왕께서
피부병이 있어 온양으로 온천욕을 하러 가다 이곳에서 잠시 멈춰 이 샘물로 목을
축이게 되었는데, 물이 차고 맛이 좋아 크게 기뻐하며, 찬우물이라 명명하시고 샘물
관리를 위하여 샘물 근처의 농토에서는 세금을 받지 말라는 어명을 내렸고, 그 후
부터 근처에 객사가 지어졌다고 전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에도 이곳의 농토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일대에는 옛날의 기와편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객사 아니면 근처에 절터가 있었다고 추측하나, 확실히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여튼 그 후에 찬우물이란 이름 대신 임금님이 드신 샘이라 하여 어정(御井)
이라고 부르며 약수터로 유명한 곳이다. 현재는 가장동상업단지에 편입되어 건물과
길이 들어서며 없어졌다.
한편 가장동에 정착해서 살았던 사람들은 대체로 청주 한씨, 창원 유씨, 경주 이씨
등이 대성을 이루고 있었으나, 지금은 창원 유씨만이 집성촌을 이루며 마을을 지키
고 있다. 두소나무백이는 가장동에서 산제사를 드리는 곳이었으며, 40리 밖에서도
볼 수 있었던 큰 소나무가 두 그루 서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 소나무들은 죽고 없
다.
* 배만이전설
가장동 외곽 도로 삼거리 근처에는 배만이산이 있는데 예전에 창원 유씨 집안에 약
관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을 크게 무찌르는 공을 세
웠으나 여러 번의 전투에서 아깝게 전사하고 말았다. 그래서 창원 유씨의 집안에서
는 그 시신을 거둬 배만이산의 기슭에 묘를 쓰고 비석 등의 상석을 세우려하니 묘
와 석물들이 가라앉아 지금까지 그 묘에는 석물이 없다고 전한다. 그래서 마을에서
는 지금도 이곳을 배만이산 또는 의정평(艤艇坪)이라고 부른다.
* 대호밭전설
오랜 옛날 궁터 건너에는 석산굴에 숲이 우거져 호랑이가 출몰하였다고 전한다. 마
을에는 우물이 두 곳 있는데 우물은 호랑이의 두 눈이고 묘지가 있는 곳은 호랑이
의 입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예전에 이 마을에 연안 김씨가 많이
모여 살았으며 그때 진사를 지낸 분이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가 돌아가시자 3년을
지극 정성으로 시묘하였다. 어느 그믐날 밤에 부모의 묘소를 찾아뵙고 돌아오는데
날이 너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아 걷기도 힘이 들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불을 밝혀 줘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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