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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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오산의 원삼국~삼국시대 고고유적 현황
광주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하는 오산시는 대부분 해발 200m 미만의 얕은 구릉들이 분포하고
있다. 오산의 수계 양상을 살펴보면 용인시 북부 보개산으로부터 원천-황구지천축과 오산천축
으로 볼 수 있으며 주변으로 이들 하천에 의한 퇴적평야가 발달하였다. 산계 양상은 노적봉을
중심으로 하는 세마동 일대의 북서방향 산계와 동쪽 내삼미동의 필봉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뻗
어 있는 산계, 반월봉과 독산, 여계산 등을 중심으로 하는 동서 산계, 그리고 남동부의 대원동
10)
필봉산을 중심으로 하는 남동산계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다 .
원삼국~삼국시대 고고유적들은 오산 시내를 중심으로 오산천과 인접한 일대와 화성시 동탄
동과 경계를 이루는 북서쪽 일대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그림 1). 오산천과 황구지천은 모두 오
산을 북-남 방향으로 관통하는 주요 하천으로서 이들 주변으로 잔구성 구릉지대와 충적지가 넓
게 형성되어 있어 유적이 위치하기에 매우 좋은 자연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다. 오산을 비롯하
여 인접한 화성, 평택, 안성 등의 경기 남부지역은 현재의 주요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구간으로,
높고 험준한 산이 없어 고대부터 육상 교통로로 선호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내륙의 청주-보
은-상주를 거쳐 영남지역에서 한강유역으로 향하거나, 진위천과 안성천 등의 수계를 이용하여
남쪽의 충청 서해안 혹은 천안-아산 지역과 이어지는 최적의 루트에 해당된다. 이러한 지정학
적 양상 때문에 이 일대는 일찍이 원삼국시대부터 영남지역의 진·변한 물질문화가 재지 사회
11)
12)
에 유입되었음이 평택 마두리 유적 과 오산 궐동 유적 등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또한 6세기
이후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함에 있어 중요 거점지역으로 인식되었으며 오산 가수동 유적 13)
에서 확인된 다수의 신라주거지와 치수시설은 이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오산 독산
성이 이 일대의 중요 치소성 기능을 하며 근래 독산성과 인접한 ’오산 지곶동 유물산포지3 석곽
묘‘에서 당식 대장식구가 수습되어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도 오산지역은 중요한 거점 지방사회
14)
에 해당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 오산시사편찬위원회, 2020, 『烏山市史』1.
11) 한국문화유산연구원, 2012, 『평택 마두리 유적』.
12) 中央文化財硏究院, 2013, 『烏山 闕洞 遺蹟』.
13) 畿甸文化財硏究院, 2007, 『烏山 佳水洞 遺蹟』.
14) 최정범, 2019, 「烏山 紙串洞 遺物散布地3 收拾 唐式 帶裝飾具 檢討와 京畿地域에서의 意味 考察」, 『야외고고학』36, 한국문화
유산협회.
고고유적을 통해 본 원삼국~삼국시대의 오산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