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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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던 것으로 보인다. 마한 세력이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부터 등장했는지는 현재로서 정확히 알
기 어려우나 고고자료 및 문헌기록으로 볼 때 기원후 1~3세기까지 존속했던 것은 확실해 보인
4)
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시대의 백제(百濟)라는 고대국가 는 마한의 54개 소국 중 ‘백제
국(伯濟國)’이라는 하나의 작은 세력으로 존재했다가 4세기 이후 고대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기
존 마한의 세력들을 포섭해가면서 외연을 확장해 나간다. 즉 백제는 어느 시점부터 새롭게 등장
한 것이 아니라, 기존 원삼국시대 마한세력 내에서 시작되어 차츰 성장해나가며 결과적으로 고
대국가로의 성장을 완성한 것이다.
삼국시대 이전의 오산은 원삼국시대 마한 연맹체 중 한강 유역 집단과 중심세력이었던 목지
5)
국 사이에 존재했던 세력으로 파악 되기도 하며, 문헌 기록에서 정시(正始) 7년 마한의 나해국
(那奚國) 등 수십 국이 군현에 항복한 기록으로 보아 오산을 포함한 경기남부 지역 일대를 나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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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那奚國)으로 비정하기도 하였다 . 또한 최근에 진위천 유역의 평택 가곡리 유적 에서 원삼국
시대 제련로와 정련로가 확인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철이 아산만을 건너 곡교천 유역의 목지국
8)
으로 공급된 것으로 보는 견해 가 제시되면서 목지국의 실질적인 영향력이 미쳤던 범위의 북쪽
9)
경계는 안성천 일대까지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 원삼국시대의 오산 일대가 정확히
마한 54개 소국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현재로서 알기 어려우나, 오산 수청동 유적에서 대단
위로 확인된 분묘들의 양상 등 고고학적 정황으로 보면 중심세력이었던 목지국과 구분되는 지
역집단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조사성과가 축적된다면 보다 구체적인 면모를 파악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 백제는 도읍의 위치에 따라 건국시점부터 첫 번째 왕도 ‘한성’이 고구려에 의해 함락되는 A.D 475년까지를 ‘한성백제’로 일반
적으로 부르며, 본 고에서 다루는 삼국시대 백제는 한성백제를 의미함을 밝혀둔다.
5) 차윤환, 2013, 「백제초기 한강 중·하류역에 위치한 정치체의 존재양상-묘제를 중심으로-」, 『고문화』 제82집, 한국대학박물
관협회.
6) 노중국, 2003, 「馬韓과 樂浪·帶方郡과의 군사 충돌과 目支國의 쇠퇴-政始 연간(240~248)을 중심으로-」, 『大丘史學』71, 대
구사학회.
김수태, 2004, 「漢城 百濟의 성장과 樂浪·帶方郡」, 『百濟硏究』39, 忠南大學校 百濟硏究所.
7) 三江文化財硏究院, 2017, 『平澤 佳谷里 遺蹟』.
한울문화재연구원, 2017, 『평택 가곡리 유적』.
8) 김길식, 2017, 「원삼국~백제 한성기 경기남부지역 제철기지 운용과 지배세력의 변화 추이」, 『百濟文化』 第56輯,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정경화, 2021, 「원삼국~백제 한성기 중부지역 제철기지의 조성과 변화과정」, 『韓國考古學報』 第119輯, 韓國考古學會.
9) 정경화, 2022, 「3~5세기 오산천유역 묘제양상과 축조집단의 성격」, 『한신고고학 30주년 기념 논총』, 서경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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