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9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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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세자), 정조가 다녀간 곳이다. 특히 사도세자와 정조는 독산성 운주당에서 백성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하였다. 문화유산교육에서는 세마대의 이야기와 조선시대 정조가 다녀간 내용을 더하여
수업을 진행하였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 PPT로 오산독산성과 세마대지의 역사와 성곽 이해
- 워크북으로 배운 내용 정리
- 팝업북 만들기로 독산성과 세마대지 구조 이해
- 정조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만들어 역할극 진행함
(2)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덮개돌이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支石), 묘역시
설(墓域施設), 무덤방 등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역과 시기에 따라 그 형태는 매우 다
양하다. 일반적으로는 무덤방이 지상에 위치한 탁자식(卓子式)과 지하에 위치한 기반식(碁盤式)
또는 바둑판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오산시의 금암리 지석묘군은 여계산(해발 158m)과 석산(해발 135m) 사이에 형성된 곡간 평
지상에 위치한다. 3개 지점에 11기의 지석묘가 분포하는데, 이 가운데 9기의 지석묘가 경기도기
념물로 지정되었다. 2호 지석묘의 덮개돌 윗면에 홈구멍[性穴]이 파여 있고, 2호와 8호 지석묘
에는 채석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외삼미동 고인돌은 반월봉 서북사면 해발 30m 지점에 위치하며, 고인돌의 서쪽에는 황구지
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다. 고인돌 2기가 서로 1m가량 떨어져 있는데, 북쪽의 것을 1호, 남쪽
의 것을 2호 고인돌로 칭한다. 1호 고인돌은 특이하게 지상에 눕혀져 있는 고임돌 위에 덮개돌
을 덮은 구조로 탁자식 또는 탁자식 고인돌의 변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판석형으로 가공한 고
임돌을 눕혀서 무덤방을 조성한 사례는 없기 때문에 덮개돌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고임돌이 눕
혀졌을 가능성도 있다. 덮개돌 윗면에 15개의 홈구멍[性穴]이 파여 있다. 동쪽과 서쪽의 고임돌
은 길이가 1.75~1.8m 정도로 무덤방을 복원하였을 때, 성인 시신을 바로 펴서 묻을 수 있는 정
도의 규모로 밝혀졌다.
고인돌은 학교 교육에서 신청을 많이 한 주제였다.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주제이면서 청동기
시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고인돌 시간여행: 청동기시대 어린이와 현재 나와의 차이점 알아보기
오산시 지역문화유산교육의 시사점 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