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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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상실하였다.
④ 봉수의 위치는 현재 세마대로 추정된다.
먼저 독산성 봉수의 축조시점은 『朝鮮王朝實錄』 등 문헌기록에 따라 크게 숙종대와 영조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독산성에 봉수를 설치할 것을 최초로 건의한 것은 1690년(숙종16년)이다. 다
만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1728년(영조4년)과 1754년(영조30년)에도 독산성에 봉수를 설치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확인되고 있는데 봉수의 특성상 동일한 장소에 연이어 설치할 필요가 없
으며 그러한 설치 사례도 현재까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독산성 봉수의 축조시점은 숙종
대가 아닌 영조대에 설치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며 가장 마지막인 기록인 1754년(영조30
년)에 축조되었다고 판단된다.
한편, 독산성 봉수의 축조가 설치를 최초로 건의한 숙종대에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두
차례에 걸친 추가 건의로 약 60년이 지난 영조대에 축조된 것에 대해서는 현재 정확하게 파악
하기 어렵다. 따라서 봉수의 설치 건의와 실제 축조시점에 대한 다른 봉수들과의 비교를 통한
연구가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독산성 봉수의 운영기간을 살펴보면 1754년(영조30년) 축조된 독산성 봉수는 제5거
의 간봉으로 남으로는 양성의 괴태 봉수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수원의 천주 봉수에 응하였고 제
2거의 죽산의 좌찬령 봉수에 응하였다. 이후 1796년(정조20년) 화성봉돈이 축조됨에 따라서 제
5거는 흥천산에서 서봉산, 건달산을 거쳐 화성봉돈에 응하였고 제2거는 석성산 봉수에 응하는
13)
것으로 노선이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독산성 봉수는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보고 있어 독산성
봉수의 운영기간은 1754년부터 1796년까지 약 40년으로 단기간 운영된 것을 알 수 있다.
14)
이와 관련하여 독산성 봉수를 권설봉수로 보는 견해 가 있는데 권설봉수는 군사적으로 중요
한 읍, 영, 진, 보에서 자체적으로 설치하여 해당 읍과 영, 진, 보로만 연락하도록 운용하였고
15)
대부분 운영기간이 짧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산성 봉수의 운영기간은 약 40년 으로 단
기간이며, 조선후기 독산성의 군사적 중요성과 변방의 경보를 수원으로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
하여 설치를 건의 한 기록을 볼 때 독산성 봉수를 권설봉수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13) 주 11의 단행본
14) 주 11의 단행본
15) 1690년(숙종16년)에 설치되었다고 한다면 운영기간은 약 10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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