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1 - 오산문화총서 8집
P. 101
있는데 『朝鮮王朝實錄』과 『備邊司謄錄』의 숙종대 기록을 보면 남으로는 양성의 괴태 봉수, 서쪽
으로는 수원의 천주 봉수와 대응하는데 이는 제5거이다. 반면 『承政院日記』와 『備邊司謄錄』 영
조대 기록에는 죽산의 좌찬령 봉수와 서로 응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제2거이다. 이러한
대응 봉수들의 노선 차이가 시기에 따른 차이인 것인지 간봉의 특성상 서로 다른 노선의 신호를
중복으로 받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후 검토가 필요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제2거 봉수와 대응하는 것과 관련하여 이인좌의 난 때 청주와 죽산 모든 곳의 봉수가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으므로 향후 이와 같은 일을 예방하고자 건의된 것으로 보는 견
11)
해도 있다 .
독산성 봉수가 기록된 문헌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독산성 봉수는 기존에 대응되던 봉수들의 신
호를 좀 더 빠르게 전달하기 위한 간봉이다. 설치시기에 대해서는 1690년(숙종16년)에 처음으로
확인되나 이후에도 봉수를 설치해야 한다는 건의가 있어 독산성 봉수는 1754년(영조30년) 이후
에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된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1754년 이후 독산성 봉수에 대
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등 실제 설치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Ⅲ. 독산성 봉수에 대한 검토
12)
이번 장에서는 독산성 봉수에 대하여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 을 정리하고 그 실체에 대하여
기초적인 검토를 해보고자 한다.
① 최초의 설치 건의는 1690년(숙종16년)이다.
② 제2거와 제5거에 대응하는 권설봉수 이다.
③ 운영기간은 약 40년으로 1796년(정조20년) 화성봉돈의 축조에 따른 봉수 노선의 변화로
11) 경기문화재단, 2021, 『기전지역의 봉수』, 경기그레이트북스 28.
12) 주 11의 단행본
김주홍, 2000, 『京畿地域의 烽燧硏究』, 상명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독산성 봉수에 대한 검토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