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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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도서관,  오산문예회관,  오산스포츠센터,  오산종합운동장,  전화국,  대단위  아파트,

                  상가,  고속도로  나들목이  들어서  있다.  어찌  보면  건조한  도시의  형태를  띠고  있지
                  만,  한`때는  오산을  대표하는  쌀  생산지였다.  이곳에  전해지는  운암들전설을  이야기
                  하고  기록하려는  것은  도시화  속에  잊혀져  가는  추억을  현대에  접목  그  옛날  한  톨
                  의  쌀이라도  더  생산해야  했던  어려웠던  우리의  옛일을  반추하려고  함에  있다고  하
                  겠다.  지금의  이  풍요는  더  많은  쌀  생산을  염원했던  전설  속  우리  선대들의  마음

                  이  녹아  있어서였을  것이다.  현재  운암들은  글자  그대로  아파트가  구름처럼  솟아올
                  라  구름바위(雲岩)가  되어  있다.  확실치는  않지만,  지금의  오산천이  옛날에는  운암
                  들을  가로질러  하류에서  만났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만큼  그  당시에
                  는  둑이  지금처럼  높고  튼튼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물길이  지금처럼  일정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개발되지  않고  남은  운암들도  곧  개발될  예정에  있다.






                  ★  애기바위전설



                      여계산  중턱에  있는  바위로  옛날  임진왜란  때  아기가  숨어  있는  바위를  톱으로
                  잘라  애기를  죽인  바위로  지금도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  바위에는  애
                  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금암동은  예전에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길지로  보였던  모양이다.  임진
                  왜란  때에  왜군이  금암동에  들어와  약탈을  하였다.  이때  왜장은  풍수에  밝은  사람
                  이었는지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더니  큰  인물이  태어날  지형임을  알고  부하들을  시
                  켜  어린  사내아기와  임산부를  모두  죽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을을  뒤져  마구잡이로
                  살생을  저질렀다.  그런  와중에  마을에  한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마침  아들이었다.

                  그러나  기뻐할  사이도  없이  아기를  살려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래서  부인은  아
                  기를  감추고  자신이  희생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마음을  굳히고는  일부러  임산부처럼
                  배에  바가지를  넣고  마을을  활보하였다.  드디어  마을  입구에서  왜병들과  만나게  되
                  었는데  왜장은  이  부인이  이미  어린애를  낳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고  부인에게

                  아기가  있는  곳을  물었으나  말하지  않자  부인의  배를  칼로  자르게  하였다.  짐작대
                  로  부인의  배에는  엎어  놓은  바가지가  나오자  부인을  살해했다.  그리고는  마을을
                  샅샅이  뒤지게  했으나  아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기  엄마가  살해된  지
                  이틀이  지나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산에서  들렸다.  왜병들은  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큰  바위  밑에서  들려  왜병들이  바위를  치우려  했으나  바위는  움
                  직이지  않았다.  왜장은  부하들을  시켜  바위를  톱으로  자르라고  하였다.  톱으로  바위

                  를  자르기  시작하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얼마  후  바위는  두
                  동강이  났고  그  안에서  선혈이  낭자한  아기의  시체가  나왔다.  결국  왜병들은  마을
                  의  아기들과  임산부를  모두  살해하고  떠났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애기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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