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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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 역사의 기원
1. 유물로 본 오산시의 역사 기원
유물로 보는 오산의 역사는 구석기시대부터 시작한다. 지금까지 오산시에서 확인
된 구석기시대 유물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청호동유적과 내삼미동유적, 외삼미동
유적, 지표조사를 통해 알려진 갈곶동유적이 있다. 청호동유적에서는 750점의 구석
기가 수습되었으며, 석기의 종류에는 주먹도끼, 외날 및 안팎날찍개, 몸돌긁개, 여
러면석기 등의 자갈돌석기와 긁개, 밀개 등의 잔손질된 석기, 그리고 몸돌 및 격지
등이 있다. 청호동 구석기 유적은 기원전 4~3만년에 형성된 것으로 후기구석기시
대에 해당한다. 사용된 석재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규암이다. 내삼미유적에
서는 지표수습된 5점과 문화층에서 나온 29점을 포함하여 총 35점이 보고되었다.
석기로 사용된 석질은 석영맥암이며 종류는 몸돌과 양면찍개, 격지, 긁개, 홈날, 여
러면석기 등이 있다. 외삼미동유적에서는 모두 17점의 석기가 출토되었는데, 몸돌
10점, 찍개 2점, 여러면석기 2점, 긁개 2점, 홈날석기 1점이다. 석기 제작에 사용된
석재는 석영맥암이 12점으로 71%를 차지하며, 규암이 5점으로 29%에 해당한다.
외삼미동유적의 구석기는 현재까지 발굴된 구석기유적 가운데에는 가장 이른시기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고고학적 성과에 의하면 오산에 처음 인류가 등장한 시기는
구석기시대 기원전 8~7만 년 전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향후의 발굴 조사에 따라
그 시기가 상향될 가능성은 있다.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의 주먹도끼는 1978년에
미군 병사 그렉 보웬(Greg Bowen)이 한탄강변 전곡리유적에서 구석기시대의 석기
를 발견하면서부터 세상에 알려졌다. 세계 구석기학계는 1970년대 후반까지도 유럽
과 아프리카는 기존의 찍개문화에서 발전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이용하였고, 동
아시아는 찍개 전통이 계속 이어졌다는 하버드대학교 모비우스 교수의 구석기이원
론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연천 전곡리유적에서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주먹도끼
가 발견됨으로써 이 학설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 전곡리 선사유적 발굴 성과는 세
계 구석기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주먹도끼는 남한의 여러
지역에 분포하는데, 오산의 청호동유적을 비롯하여 이웃지자체 지역인 화성의 오산
동유적, 청계동유적 등에서도 발견되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유물로서는 오산시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유적인 오산 가장동유적
의 2개소 지점과 내삼미동유적에서 확인되었다. 가장동유적에서는 집터 1기(기원전
2800~2500년)와 소성유구 1기, 구덩이 유구 1기(기원전 1886~1756년)가 보고되
었다. 두 유구 모두 신석기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연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오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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