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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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록 명하였다.  정조는 “공씨가 우리나라에 와서 처음 수원에 거처한 것이 읍지에 실려 있고,
               일전에 경기감사에게 도성과 형편을 들이라 하여 보니 과연 기이하게도 사당이 있고 은행나무
               가 있으며, 세거한 후예가 있었다. 또 궐리에서 수십 리 떨어진 곳에 새로 건립한 영당이 있다.”
               는 것을 열거하면서 궐리사 창건을 특별히 지시한 것은 공자에 대한 존숭을 표하는 것도 있지

               만 공자의 학문적 후예라는 인식 속에서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 주자학을 숭상하는 노론을 억
               제해 탕평정책을 공고히 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듬해 궐리사가 완공되

               자 직접 편액을 써서 하사하고, 내각(內閣)에 소장된 공자 영정과 수원부 광덕면(현재 평택시 현
               덕면)의 영당(影堂)에 봉안된 공자 영정을 이안시켜 공자 후손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하였
                 28)
               다.  이러한 창건배경으로 화성궐리사는 공자의 사당이면서 조선 정조가 만든 유학의 상징이
               라고 볼 수 있다.   29)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오산시화성궐리사의 활용은 국왕이 세운 유일한 궐리사라는
               장소의 독특성과 공자와 정조의 철학을 담은 프로그램, 성적도목판을 현대적 감각으로 변용한

               체험활동,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은행나무와 연결하여 소원을 비는 북 쳐보기, 오산독산성과 세
               마대지(사적, 1964년 지정), 물향기수목원 등과 연계하여 참여대상자별 프로그램을 진행 중에
               있다. 오산시화성궐리사에서는 2016년부터 활용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2021년에 진행한 프로

               그램 내용은 <표5>와 같다.      30)
























               27) 正祖實錄 券35, 正祖16년 9月 29일
               28)  正祖實錄 卷46, 正祖 16年 10月 3日 戊辰, “令道伯就其闕里舊址 建一屋子 妥安聖像在內閣之本 而影堂本奉 來同藏 號曰闕里
                 祠 祠扁當書下”
               29) 신영주, 2020, “오산시궐리사”와 “궐리사성적도” 문화재 명칭에 관한 제언, 烏山學硏究(Ⅵ), 126-134쪽
               30)  화성궐리사 활용 프로그램은 ‘행단에 열린꿈 궐동학교’의 명칭으로 진행중이다. 본 자료는 10월 20일까지 진행한 내용으로
                 작성



               140  신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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