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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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京畿道 古蹟臺帳』은 일제강점기 식산국 산림과(추정)에서 1916~1917년 사이에 조
사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독성여왕릉에 대한 기록은 水原郡 古墳條에서 확인되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16)
『京畿道 古蹟臺帳』 水原郡 古蹟 (도판 2)
장소 : 성호면지곶리, 소유 : 사유,
적요 : 둘레 약 2간, 토분 1개가 있다. 묘 앞에 2개의 석인과 1개의 묘〇이 있다. 마을사람에
따르면 家陵으로 불리는 고려 왕자의 무덤으로 전해진다.
경기도 고적 대장의 기록은 당시 성호면 지곶리(현재 지곶동)에서 확인된 고분에 대한 기록으
로 규모와 형태, 성격 등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기록은 수원군읍지와는 다르게
고분으로 종류만 구별되어 있고 별도의 명칭이 표기되어 있지 않아 이 고분이 독성여왕릉 인지
는 확실하지 한다.
다만, 고분의 위치가 성호면 지곶리로 되어 있는데 경기도 고적 대장에 기록된 독산성의 위치
도 성호면 지곶리로 되어 있어 독산성과 이 고분이 같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분에 대하여 陵으로 불리고 묘주가 고려왕자로 전해진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수원
군읍지의 독성여왕릉 기록과 유사한 부분이다. 따라서 경기도 고적 대장에 기록된 고분은 별도
의 명칭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독성여왕릉의 기록으로 판단된다.
한편, 오산시의 「향토의 역사와 유적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된 지표조사를 통해 지곶동 폐
17)
고분(속칭 여왕릉) 1기가 보고 되었는데 주민들은 『수원군읍지』의 여왕릉으로 비정 하고 있다.
18)
이 폐고분은 봉분의 흔적은 없지만 장대석 3기와 문인석 1기가 확인되었다. 폐고분의 시기에
대해서는 문인석이 복두공복형으로 조선전기 양식이고 고려왕릉이 개성을 벗어난 곳에 있을 가
능성이 낮아 여왕릉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여 조선시대의 분묘로 보고 있다.
16) 『京畿道 古蹟臺帳』水原郡 古墳
場所 城湖面紙串里 所有 私有
摘要 圣約二間, 土墳一アリ墓前二石人一墓〇ル里人ハ家陵ト称〇高麗, 王子, 墓ナリト傳フ
17) 주7의 보고서.
20) 이 문인석은 현재 사진만 남아있고 실물을 확인 할 수 없다. 2008년 한신대학교박물관에서 동일한 위치를 지표조사(오산
시ㆍ한신대학교박물관, 2007,『文化遺蹟分布地圖-오산시』.) 하였지만 문인석에 대한 내용이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소실
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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