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9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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雄請拜) ⑥⑦조상-안ㅅ당굿(祖上-內堂賽神) ⑧셩쥬푸리(成造神歌) ⑨선왕굿(城隍賽神) ⑩계면
굿 ⑪터쥬굿(基主賽神) ⑫마당굿(庭賽神)으로 이뤄졌다(한글로 채록된 부분을 그대로 옮김). 부
산동에서 채록된 이 무가는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다. 이렇듯 세습무 화랭이가 주도하여
진행하는 경기도도당굿에서 이용우 가계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산동을 현지 조
사해 2009년 『오산시사』에 수록한 김용국은 “부산동 일대에는 예전에 소리꾼을 길러내는 사람
들의 얘기가 전해 내려오며, 유명한 단골무당이 3명 있었다고 한다. 당시 단골무당은 지씨(지삼
룡), 이씨(이용우, 원래 이름은 이남북), 신씨(신경식)였다. 지씨는 자전거를 뒤로 타고 다닐 정
도로 서커스를 잘 했으며, 이씨는 피리 불고 소리를 잘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씨는 상쇠잡이로
유명했다”고 오래 전 마을사람들의 기억을 전한다.
부산동에는 매암산 밑에 당집이 있었다. 김용국은 “당집은 외관상 기와처럼 보이나 검은색 슬
레이트 지붕이며 외벽을 붉은 벽돌로 쌓았다. 그리고 당집 밖에는 아궁이가 있는데 이는 제의
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당집 내부에는 제의에 사용되는 그릇들이 보관돼
있다. 당집 왼쪽으로는 엄나무가 있다. 수령이 200년이 되었다”라며 당집의 모습을 기록했으나
최근에 매암산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당집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당집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산신제가 열렸다. 김용국은 “당집에서 산신제를 지냈는데 제상에는 소머리, 닭은 한
마리, 대구포, 사과와 배를 각각 7개씩 올린다. 그리고 떡은 흰색의 가래떡과 검은색의 시루떡
을 사용하는데 특이한 것은 가래떡을 용떡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용떡을 올리는 지역은 흔히 바
닷가 마을인데 부산동의 산신제에서 용떡을 사용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라고 부산동 산신제
에 대해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경기도도당굿이 경기도 서남부 지역 해안의 풍어굿과 구조적으
로 관련이 있다는 학계의 주장과 ‘용떡’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경기도도당굿 전수교육조교 오진수는 “이용우 선생 생전에 부산동에서 도당굿을 한 걸로 안
다. 사후에도 한 번 정도 도당굿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 외에 도당굿에 대한 기록이나
증언은 듣기 어려웠다. 이종만의 ‘오산 12제차’도 재수굿으로 도당굿과는 거리가 있고, 무형문
화재 보유자 오수복과 이용우가 용인 기흥 보라리에서 산신제를 진행했다는 기록이 있는것으
로 보아 부산동의 마을굿은 무속형태의 산신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능화의 “우리 조선
의 풍속에 산신에 대한 제사를 ‘도당굿’이라 한다”는 ‘조선무속고’의 기술도 그렇게 판단하는 근
거다. 현재 오산시는 이용우의 생가는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생가터 마을 입구에 표지석을 세워
부산동이 경기도도당굿의 중심지였음을 알리고 있다. 화랭이 이용우의 가계가 있던 부산동과
경기도도당굿의 관계, 조선 최고의 문화예술인의 구심체였던 ‘경기재인청’ 근거지로서의 부산동
에 대한 심도 있는 학술적 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도당굿의 현황 및 전승 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