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6 - 오산학 연구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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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의 관선과 상선이 출입하던 대당 무역항으로 판단한다.
비단 옷을 입고 금당골과 보초골, 회룡골과 송대를 지나간 인물을 당과 신라의 사신으로 본
다. 그 중에서 회룡골을 지난 사신을 김춘추와 김법민으로 본다.
은수포와 화량포를 통일신라의 당은포(唐恩浦)로 본다. 당성과 화량진성이 호위하는 은수포
와 화량포는 구봉산 당성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완도 청해진과 석도 적산포에 국제무역항
을 설치하였던 장보고의 해상 중간 기지로 본다. 당고지(唐串)의 은수포(銀樹浦)에 이미 당은포
(唐恩浦)의 지명이 담겨있는 것이다.
원랑이 석 달 동안 수도했던 직산의 寓▧▧▧▧을 寓居長生寺로 석문한다. 청명산 서쪽에 위
치하였던 절명산장생사(絶命山長生寺)는 서신면 궁평리의 영생이골(永生之谷)에 소통된다. 장
생사의 장생(長生)과 영생이골의 영생(永生)은 그 의미가 같다. 지금의 안곡서원의 옆 자리에 위
치하였을 것으로 판단한다.
원효가 성도한 토굴무덤을 현재의 청명산법흥사 터로 본다. 원효의 후학들이 신승 원효가 성
도한 장소를 기려 세운 암자터로 본다.
당항진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대당(對唐) 무역항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대송(對宋) 무역항이
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대명(對明), 대청(對靑) 무역항이었다.
지금도 남양만의 입파도 해상으로 중국의 화물선 ‘大唐(Great Tang)’호가 정기적으로 지나다
닌다.
B. 제언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 문화예술과, 화성시 문화예술과에 바란다.
하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전하는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의 불명확한 글자 「寓▨▨
▨▨」의 컴퓨터 영상 기법의 촬영을 요청한다. 문제의 글자가 「寓居長生寺」로 확인된다면 경기
도 화성시에서 신승 원효가 성도한 장소를 찾게 되는 것이다.
둘, 비문의 결자가 「寓居長生寺」로 확인된다면 청명산 입피골에 가죽나무로 만든 홍문을 세울
것을 건의한다. 그 형태는 사찰 앞에 세우는 일주문이나 능묘 앞에 세우는 홍살문의 형태가 좋
을 것이다. 그 성격은 신라의 해문역을 의미하는 홍문이고 원효의 성도처를 알리는 일주문이다.
그 재료는 가죽나무이어야 할 것이다. 거죽은 비늘 갑옷과 같고 속살은 피처럼 붉은 참죽나무이
어야 할 것이다. 그 위치는 화성시 마도면 금당리와 백곡리를 경계하는 백곡교의 좌우 난간이
좋을 것이다.
204 임종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