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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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백제 14~17대 왕의 기록



               1) 제14대 근구수왕 여수餘須



                 백제 제14대 근구수왕의 이름은 여수餘須이다. 근구수왕 2년, 왕은 장인 진고도眞高道를 내
               신좌평內臣佐平으로 삼아 정사를 맡겼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구수왕 10년 2월의 주요 기록

               은 다음과 같다.


                   十年, 春二月, 日有彙三重, 宮中大樹自拔, 夏四月, 王薨


                   10년, 봄 2월, 해에 3중(重)의 무리(彙)가 생겼고, 궁중(宮中)의 큰 나무가 저절로 뽑아졌다. 여름 4
                   월에 왕이 돌아갔다.



                 근구수왕 10년 2월의 기록은 정치적 격변을 우회적으로 기록한 기사로 보인다. 여기서 해
               (日)는 왕(근구수왕)을 의미하며 3중의 무리는 왕위를 둘러 싼 세력 다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궁중의 큰 나무 또한 왕(근구수왕)을 지칭한다고 보인다. 근구수왕 여수가 노환으로
               병석에 눕자, 그를 둘러 싼 왕가 및 외척 세력이 3패로 갈려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인 듯하다.



               2) 제15대 침류왕 여전餘田?


                 백제 제15대 침류왕의 이름은 알 수 없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중국 측

               사서인 송서宋書에도 그의 이름은 없다. 백제 침류왕이 사신을 보내왔다고 기록할 뿐이다. 단
               지 왕위에 오른 지 18개월 만에 왕위를 버렸다는 기록이 전할 뿐이다. 침류왕의 이름을 기록하
               지 않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침류왕이 왕위에 오르기는 하였으나 왕권 다툼은 가라앉지 않은 듯하다. 왕가 및 외척 세력
               의 다툼은 더욱 과열된 듯하다. 침류왕 원년과 2년의 주요 기록은 다음과 같다.


                   近仇首王之元子, 母曰阿尒婦人, 系父卽位, 秋七月, 遣使入晉朝貢, 九月, 胡僧摩羅難陀自晉至, 王
                   迎致宮內禮敬焉, 佛法始於此. 二年, 春二月, 創佛寺於漢山, 度僧十人, 冬十日月, 王薨.


                   왕은 근구수왕의 원자요 어머니는 아이(阿尒)부인이다. 아버지를 이어서 즉위하였다. 7월에 사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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