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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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남쪽에서 성을 쌓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북쪽에서 성을 쌓았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딸이 돌
아오는 길목을 지키면서 초조한 마음에 흙을 한 줌씩 쥐었다 놓았다. 할아버지가 쥐었다 놓은 흙이
산봉우리가 되어 아흔 아홉 봉우리가 될 때에 동쪽에 해가 떠오르고 딸이 돌아와 버렸다.
이 때 아들은 약속한 성을 다 쌓지 못하였다. 할머니는 북쪽의 성을 다 쌓았으나 아들은 남쪽의 성
을 다 쌓지 못하였다. 그래서 노부부는 내기에 진 아들을 죽이게 되었다.
아들의 목을 베자 천둥번개가 치며 9년 가뭄 해소의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할아버
지와 딸도 벼락을 맞아 죽었다. 한꺼번에 아들과 딸과 할아버지를 잃고 혼자 남아 애통하게 살던
할머니는 죽은 후에 산신이 되었다. 용인의 진산인 성주산(聖住山) 수호신이 되어 용인지역의 상산
신령이 되었다.
2) 백제 건국 초기의 역사와 할미성 설화
백제 건국 초기의 역사를 성주산 할미성 설화와 비교하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용 할미성(老姑城) 설화 백제 건국초기의 역사 비류와 온조의 입장
고구려를 떠나 도읍을 고구려를 떠나 도읍을
가뭄으로 겪은 9년간의
세우기까지 겪은 9년간의 세우기까지 겪은 9년간의
어려움
어려움 어려움
발단
비류와 온조는 의견차이로 비류와 온조는 의견차이로
두 성을 서로 이어 쌓지 못한
따라온 백성을 나누어 따라온 백성을 나누어
아쉬움
미추홀과 위례성으로 갈림 미추홀과 위례성으로 갈림
해빈 미추홀에 도읍을 세우다
성 쌓는 내기의 결과에 실패한 비류
따라 살고 죽는 아들과 딸 하남 위례성에 번듯한 도읍을 나이 어린 온조는 어머니
세운 온조 소서노의 도움으로 하남에
전개
도읍 위례성을 세움.
도읍 하남 위례성의 북쪽에
아들이 쌓은 남쪽의 허술한
병산책(甁山柵)을 쌓고
책(柵)과 어미가 쌓은 북쪽의 나이 많은 비류는 해빈
마수성(馬首城)을 세워
튼튼한 성(城) 미추홀에 도읍을 세우려다
낙랑과 말갈의 교통을 막음
실패하여 죽음.
王母 소서노가 5虎에게
아들의 목을 베자 천둥번개가 비류를 따르던 백성이
시해당함
치며 9년 가뭄 해소의 장마가 위례성으로 돌아옴
절정 온조왕은 한산(漢山)에
시작됨 그 와중에 할아버지와
책(柵)을 세우고 위례성의
딸도 번개에 맞아 죽음
민호(民戶)를 옮김
독성려왕릉禿城麗王陵의 정체에 대한 小考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