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3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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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인류는 무속을 문화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무속은 자연의 변화에 나약하기만 했던 고대인

                류가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것도 비가 오지 않는 것도 절
                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에 의하여 벌어지는 현상으로 인식하였기에 우리가 신(神)이라고 이름

                한 절대적 존재를 기쁘게 하여 원하는 것을 이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 과정과 형식이 예술
                이자 무속이다.
                  인류의 문화가 비록 현재의 겉모습은 달라 보이나 그 알맹이는 모두가 동일한 지점에서 출

                발하고 있다. 마치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면서 색깔도 모양도 변화시키면서 그 온전한 기억
                을 유전자에 담아 다음세대에 전달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무속을 통하여 문화를 들여다보고, 오늘날 우리가 전통문화라고 하는 것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이룩된 것인지를 되짚어 보는 것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관문인 셈이다. 이 글
                에서는 이점에 주목하였다. 오산시의 문화적 전통성에 대한 이해의 근간을 무속에서 찾고자
                하며, 특히나 경기도 재인청의 본거지였던 가마뫼[釜山洞]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의도

                이다.
                  오산시 부산동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의 영향(影響) 하에 있었다. 그러하기에 무속인과

                예인들의 집단인 경기도 재인청(才人廳)의 본거지가 자리할 수 있었다. 경기도 재인청은 4만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조선 최고이며 최대의 재인(才人) 집단이었다. 그러하니 경기재인청의
                기량과 권위는 적어도 경기도 권역의 방방곡곡(坊坊曲曲) 두루두루 그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

                다고 추단(推斷)된다.
                  본고에서는 경기재인청의 위상을 돌아보고 오산시 전통문화의 뿌리가 부산동을 향하고 있

                음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그리하여 오산시의 문화적 위상을 재차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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