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8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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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고 정확한 고증의 자료를 수집하여 발표하면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역사, 문화예술 관계자들의 인식 속에서만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속에서도 경기도당굿과 이용우, 경기재인청의 관심이 늘어나고, 오산시당국의 지원과
관심도 이루어지면서, 2015년에는 학술발표회가 기획되어, 제6회독산성문화제 행사 일환으로
오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Ⅵ. 나가며
오산(烏山)은 고대로부터 오랜 기간 수원부에 속하며 내려오다가, 1914년 4월 1일 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수원군 산성면(山城面), 청호면(晴湖面), 문시면(文市面), 초평면(楚平面)의 전
역과 어탄면(漁灘面) 일부를 합하여 수원군 성호면(城湖面)이 되었다. 1941년 10월 1일 수원
군 성호면으로 불리어오던 것이 수원군 오산면(烏山面)이 되었으며, 1949년 8월 화성군 오산
면(烏山面)이 되었으며, 1960년 1월에 화성군 오산읍(烏山邑)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1월 1
일에는 오산시(烏山市)로 승격되고 시 당국은 시 승격 당시의 명칭을 오산시(烏山市)로 명명하
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특히 1789년(정조13년) 수원의 화성이 축성되고 현재 융릉
주변인 화산에 있던 수원부 읍치의 팔달산(화성행궁)으로의 이전 전까지는 오산은 수원의 중
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구읍치). 현재의 개념으로 신도시인 현 수원시는 이후 큰 발전을 거
듭하여 경기도청 소재지인 인구 100만이 넘는 거대도시로 발전하고(신읍치), 오산은 정체되어
오다가, 현재는 인구 유입이 꾸준하여 22만에 이르는 조그마하지만 발전 가능한 경기 남부의
작지만 강한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오산시는 시 경계 내에서의 역사를 재정립하는데 많은 힘을 쏟고 있으며, 오산시만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고히 하려는 노력들을 경주하고 있다. 그렇다고 오산이 수원시와 화성군
시대의 역사를 배타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며, 역사의 연속성은 간직하면서도 오산시만의 역사
를 다시 정립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당굿도 오산의 정체성에 충분히 녹일 수 있는 오산
만의 자산이라 생각하기에, 오산의 시민들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복원을 통한 재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걸음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학술대회를 통한 학문적 축적과 오산의 축제 프로
236 남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