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7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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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지자체보다도 늦게 이 논의에 뛰어 들은 오산시의 향토사가, 문화예술관계자와 언론인

                들이 2013년 오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모였다. 이 자리에는 ‘경기재인청을 살리기 위한 간담
                회’를 갖는다.



                    “이 자리에는 김용국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장, 남경식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유종대 오
                    산문화원 사무국장, 이희석 오산학연구회장, 이운태 오산예총 사무국장, 이화정 오산연극지부장,
                    이소정 오산연극지부 사무국장, 김준일 경기도국악협회 사무국장, 박문정 오산문화재단 홍보팀장
                    등 경기재인청을 조명하기 위해 만났다. 이용우선생이 삼남대로의 오산시 부산동에 소재했던 청호
                    역 부근인 현 부산동에 거주하면서 무속인들의 교방 역할을 하였다는 것과 스토리텔링의 연극 형
                    식으로 재현하는 것도 좋겠다는 것과 재인청에 관련된 사업을 하자면 오산문화원과 오산문화재단

                    이 토대를 만들어야한다는 것과 재현을 위해선 학술세미나가 필요하고 정확한 고증이 뒷받침 되어
                    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첫 발자국을 내딛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14)


                  필자가 오산의 부산동이 경기재인청이 있던 곳이라 주장하는 큰 이유는 오산의 부산동은 청
                호역이 있던 곳으로 화성행궁이 있던 수원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수원부의 행사에

                참여하라는 기별을 받으면 삼남대로의 도로변에 가까이 위치해 있기에 빠르게 갈 수 있으며,
                안성이나 남쪽 방향으로의 이동도 용이한 곳이다. 신분이 하찮은 재인청 소속원들이 권력자들

                로부터 멀리 벗어나 눈치 보지 않고 모여 살기 좋은 곳으로 교통도 사통팔달 뻗어 있는 곳이
                다. 낮은 신분 때문에 화성행궁 안에서는 살기가 불편하거나, 살 수 없었으리라는 점도 충분히
                생각되어진다. 또 하나 추론은 어느 단체든 단체의 장들은 단체 청사에 머물기 좋게 가까운 곳

                에 거주했으리라는 생각이다. 도대방 이종하와 도산주 이종만이 살던 곳이 부산동이고, 세습
                무의 신분을 대대로 수행해 왔으므로 오산시 부산동(당시 수원 부산리)에 경기재인청이 있었

                을 확률은 매우 높다고 보는 것이다. 또 상당수 학자와 증언자들이 부산동에 경기재인청이 있
                었다는 것을 확언하고 있는 것도 큰 이유이다.


                2. 오산시의 경기재인청 복원 인식


                  오산의 경기도당굿에 관한 오산시민들의 관심과 집중은 아직은 미미하나, 역사, 문화예술

                관계자들의 복원 재현에 강한 의지가 넘치고, 관계 기관의 관심도 많이 좋아졌으며, 꾸준하게



                14) 이숙영 기자, 「오산시민신문」 1면, 2013.7.10


                                                          경기도당굿과 경기재인청 그리고 이용우의 삶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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