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6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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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이다.
오산지역이 타 지역보다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이 펼쳐진 배경에는 오산지역의 교육열을 들
수 있겠다. 오산은 일찍부터 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사립학교인 신명학교가 있었다. 일제는 이
학교를 폐쇄시키고 1913년 4월 1일 오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를 개교시킨다. 학교가
타 지역보다 일찍 존재한 것은 교육열이 높았음을 추정할 수 있겠다. 또 다른 배경은 천도교의
교세가 있었음을 배경으로 한다. 천도교인들이 만세운동에 많이 참여하였음은 이로 알 수 있
겠다. 1905년에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오산지역도 농업적인 경제침탈이 가속화되었고, 이러한
사안도 만세운동의 배경으로 볼 수 있겠다.
일제의 무단침탈과 억압은 민족의 자존적 존립에 매우 큰 타격을 주었으며, 광복한 지금도
남북 분단이란 고착적인 민족의 대립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3·1절을 맞이하
는 자세에는 이러한 우리의 반성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는 기념일이
되어야 하겠다. 오산의 시민들은 용감했다. 자랑스럽다.
3·1독립항쟁의사추모비, 오산의 3·1독립만세운동을 벌인 의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비
로서 오산역 광장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오산역의 추모비는 발상지에 세운 비는 아니고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오산의 3·1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세운 비의 성격이 강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발상지를 망각할 이유가 될 수 있다. 오산역에 세워진 비는 비대로 존치하며 오산 3·1
운동을 기리고, 원 발상지인 오산의 우시장(현 싸전시장)에 표지석을 설치하여 역사의 장소를
영원히 기록표시하는 작업을 함으로서 오산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
다. 훗날 경제적인 여유가 된다면 8의사 추모기념관 건립도 생각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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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화성경찰서(화성동부경찰서) 자리
- 화성군 오산읍 원리 351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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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동부경찰서는 2008년 4월 4일 화성경찰서가 개칭된 것으로 앞서 1978년 8월 9일 대통
령령(제 4125호)에 따라 수원경찰서로부터 분리·독립되면서 같은 해 10월2일 정식 개서(당시
화성군 1읍 16면 관할)와 같은 달 31일 화성군 오산읍 원리 351에 3층 규모로 착공, 다음해 9
월 27일 청사가 준공됐다.
7과, 17계, 1실 및 산하에 18개 파출소, 1개 출장소, 2개 대대 상설부대를 갖췄다. 당시 오산
은 화성경찰서 개서 전까지 화성군과 함께 수원경찰서 관할지역이였다.
184 남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