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4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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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오산)교육청:구청사 자리
– 현 오색시장지원센터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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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월 4일 교육자치제 부활에 따라 화성교육청이 신설되었다. 청사는 수원시 권선구
고등동에 위치했다. 그러다가 1978년 7월 5일 성호초등학교 동북쪽에, 오산전통시장(현 오산
오색시장)과 접하며 청사가 이전되어 업무에 들어갔다(구청사). 1978년 11월 6일에는 과학실 2
층을 증축 준공한다. 2006년 2월에는 오산시 내삼미동 신청사로 이전하였다(신청사). 이전하
기까지 오산의 교육을 담당해왔고, 현재 이전하여서도 교육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2009년 1
월에는 경기도화성오산교육청으로 명칭 변경, 2010년 9월에 경기도화성오산교육지원청으로
명칭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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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3·1운동의 발상지
- 오산 우시장(현 싸전시장)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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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일제강점기. 일제의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민족말살정책, 수탈정책과 헌병
경찰제도에 맞서 한민족은 분연이 일어난다. 조국을 되찾기 위해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일어난
민족대표 33인의 조선독립선언으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현장을 목격한 오산의 세교동 출신
유진홍은 감격하여 오산에서도 이와 같이 실행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유진홍은 1919년 고종황제의 국장에 참여하고자 상경해 있던 중이었다. 곧 오산으로 내려
와 이성구, 김경도, 이규선, 정규환, 김용준, 안낙순, 공칠보 등의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규합되자 의거할 것을 모의하고 각자가 비밀리에 각 동리로 연락을 취할 것을 정하
고는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 준비하였다.
오산지역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4일 오산장(우시장-현 싸전시장)에서 시작되어 3월말
까지 진행되었는데, 일경들의 감시가 심하여 결정치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3월 29일(당시
음력 2월 28일-당시는 음력으로 3, 8일에 오산장이 열렸다.) 오산장날에 거사일을 정하고 동
지들에게 각 동리에 연락을 취하게 하였다.
그러다 3월 25일 오산리의 만세운동이 젊은 학생들과 천도교도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
작해 금융조합과 일본인, 중국인 가옥을 파괴하며 전개되었다. 이후 오산리에서 3월 29일 오
182 남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