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1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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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 글들은 필자가 정리한 오산의 이야기들로서 잘못 기술되어 잘못알고 있는 부분, 또는 아

                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나 사실, 새롭게 발굴된 이야기, 오산시에서 추진된 사업에 관한
                내용 등등을 모은 글이다. 사실에 기초해서 씌어졌으며, 이곳의 내용과 다르게 기술된 것은 이

                곳의 사실을 참고삼아 바르게 인지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쓴 글이다.


                1. 오산비행장 지명유래



                  일제강점기 때 자동차를 시동하자면 으레 스타팅을 돌려야 했고, 비행기는 프로펠러를 돌려
                주는 차가 있었으며, 그 차는 약 2m 길이 파이프가 앞에 매달고 있어 이륙할 비행기 앞에 가

                서 파이프를 들어 프로펠러를 꼽고 시동을 한참한 뒤 비행기를 움직였다.
                  <오산비행장>에는 친일파로 분류되는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과 관계되어있는데, 박흥식이
                건설하여 조선총독부에 헌납한 것에 연유한다.

                  서울 여의도에는 일본군의 비행장이 생겼고, 오산에 두 번째, 김포에 세 번째로 건설되었으
                나 오산과 김포에는 일회용 비행기만 배치시켜놓고 나무로 위장하였고, 시동차만 배치시켰으

                며, 경비병을 배치해 보초를 철저히 서게 하였다.
                  김포비행장은 일본국 정부 공사로 일제가 작업인원을 동원해서 근처 산 흙을 운반해 넓은
                논바닥을 메웠으나, <오산비행장>은 박흥식이 사비를 들여 직접 건설한 비행장으로 공사 완료

                와 동시에 조선총독에게 헌납하고 표창을 받기도 했다.
                  『오산시사』에 <오산비행장>이 보이는 것은 광복이 된 1945년에 일제강점기 때 경비행기 활

                주로로 사용하던 오산천둔치(지금의 시민회관과 공설운동장 자리)에서 조국광복 경축 제1회
                전국축구대회를 개최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해방 직후 미군은 김포비행장을 사용하다가 <오산비행장>도 사용하게 되었는데, 1950년

                6.25 한국전쟁까지 발발하자 재개수하며 미군의 비행장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이후 1952
                년 평택시 송탄지역에 새로 건설하여 갔고 명칭은 그대로 사용되었다. <오산비행장>은 현재<
                K-55오산에어베이스>로 불리며 평택시 송탄지역에 존재한다. 송탄의 <K-55에어베이스>는

                1952년경에 평택군 송탄면 신장리와 서탄면 적봉리 일대에 건설되었다. 이곳에는 본래 신장
                리, 원적봉, 야리, 신야리, 장등리 긴등과 같은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미군기지가 건설되면서



                                                           새롭게 기억하고, 기록되어야 할 오산이야기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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